홍차구의 전함 건조 재촉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다 (원종 15년,127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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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밀원부사 허공(許供)을 전주도 도지휘사(都指揮使)로 삼고, 우복야 홍록주(洪綠週)를 나주도 지휘사로 삼았다. 또 대장군 나유(羅裕) 등을 보내어 제도 부부사(部夫使)로 삼고 공장(工匠) 역도(役徒) 3만5백여인을 징집하였다. 이때 역마 연락과 여러 업무가 번거롭고, 기한을 급박하게 몰아치기를 바람과 번개와 같이 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심히 괴로웠다. (제주문화방송 「속탐라록」, 1994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