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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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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녕부 등지의 백성들을 선원으로 보충하도록 원에 요청하다(원종 15년,1274년 4월)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4월 갑자에 간의대부 곽여필(郭汝弼)을 원에 보내어 표를 올려 말하기를 「저희 나라는 땅이 좁고 사람이 희소하여 병(兵)과 농(農)의 구별이 없고 게다가 조잔(凋殘:조락하고 시들음)이 이미 심합니다. 그러므로 지난번 탐라에 정벌 갔던 병졸과 초공(梢工:배 키잡이)들이 이제 또 조선역(造船役)에 나갔습니다. 이제 동정(東征:일본 정벌)의 병졸과 초공도 또한 마땅히 조선역부(造船役夫)에서 골라 내어야 할 따름입니다. 홍다구가 김방경에게 이서(移書)하여 말하기를, 배 3척과 초공(梢工) 수수(水手) 1만5천인을 미리 먼저 준비하라 합니다. 그 수가 심히 많으니 어찌 단지 저희 작은 나라 사람으로 충족되겠습니까. 원래 소관하였던 제주·동녕부·북계의 여러 성 사람 및 서해도에서 부역을 피하여 동녕부로 도망가 있는 자들이 모두 능히 바다에 익숙하고 또 배를 조종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모두 쇄환하여 일본 정벌군에 보충하도록 하십시오. 또 경오년(원종11년) 이래 지금까지 5년이 되는데, 군(軍)에 공급하는 군량이 일찍 떨어졌습니다. 이제 조선부장(造船夫匠) 및 감조관(監造官) 등 3만 5백인과 종전군(種田軍) 홍총관군(洪總管軍:홍다구 휘하 군사) 제주유수군 등의 양미는 오로지 양반 녹봉과 여러 부세(賦稅)를 가지고도 오히려 넉넉히 지급하지 못하며, 또 내외 관민에게 수렴하여 보아도 다 되어 남은 것이 없습니다. 특히 성자(聖慈)하심을 입어 2만석의 쌀을 수송하여 군인 식량에 보조하시었으니 온나라가 감대(感戴)하옵니다. 또 성은(聖恩)을 입어 쌀값으로 비단을 내려주시니 감사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정벌의 역(役)으로 중외(中外:서울과 지방) 공사(公私)가 이미 허갈(虛喝)되었고 또 조선(造船)으로 인하여 농사 일이 때를 잃었사오니, 비단을 팔아서 양식으로 쌓아두는 일도 뜻대로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하였다. (제주문화방송 「속탐라록」, 1994 발췌)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451
저자명
정인지 외
소장처
국사편찬위원회
조회
23
Link
http://db.history.go.kr/KOREA/item/level.do?itemId=kr#detail/kr_027_0040_0040_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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