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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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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중서성에 공문 격식 등과 관련한 공문을 보내다(충렬왕 6년,1280년 11월)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기유에 우승지 조인규(趙仁規)와 대장군 인후(印侯)를 원에 보내어 중서성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저희 나라는 이미 병선 9백척과 군사 1만과 초공 수수 1만5천을 준비하였고, 군량은 중국 석수로 계산하면 11만석이고 기계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갖춤으로써 거의 힘을 다하여서 성은에 보답하고 있습니다. 또 가만히 생각하니 제후(諸侯)가 조정에 들어가 돕는 것은 예로부터 있는 일입니다. 요(遼)와 금(金) 두 나라는 우리 조상들을 개부의 동삼사로 삼았고, 저도 또한 외람되게 성은을 입어 일찍이 특진 상주국에 임명되었습니다. 제후로서 상국의 재보(宰輔)의 벼슬을 가진 것은 고금에 있었던 일입니다. 엎드려 바란건대 잘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 무릇 행성(行省)의 군국지사(軍國之事)는 반드시 우리와 상의 하여 시행하고, 사신을 조정에 보내는 데까지도 반드시 우리 사신과 함께 가게 하십시오. 저희나라는 연년 흉년으로 백성은 모두 식량이 궁핍합니다. 현재 군량미 7만7백27석을 제외하면 공사간에 모두 고갈되어 있습니다. 내외적으로 수렴하여 대략 4만석을 준비하였는데 이 이상은 마련하기가 어렵습니다. 가만히 계산하니 1만인 군인 한달 군량이 무릇 3천석입니다. 만일 군인이 3,4만명에 이른다면 그에 따른 활단지도 또한 적지 않습니다. 초공 수수도 또한 1만5천은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근자에 행성(行省)의 공문을 보니 장차 명년 5,6월에 발선한다고 합니다. 저희 나라는 매년 5,6월이면 흙비가 그치지 아니하고, 조금만 서풍이 불어도 바다 길은 안개가 자욱할 것입니다. 만일 시일을 지체하여 곧 발선하지 않게 되면 군사와 백성이 일시에 식량이 떨어질까 염려됩니다. 만약 미리 자세히 말씀 드리지 아니하고, 후에 잘못되는 일이 생긴다면 이해(利害)가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나라는 지역이 좁고 인구가 희소하여 군사와 백성의 구별이 없습니다. 지금 다시 더 4천7백명의 군인을 뽑는다면 그 인원을 충당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탐라의 진수군(鎭戍軍) 1천명으로 보충하게 하십시오. 저희 나라는 궁전(弓箭)·갑주(甲胄)가 부족하니 갑옷 5천벌·활 5천개·활시위 1만개를 보내주십시오. 또 병선 9백척에 필요한 초공 수수가 1만8천명인데, 농민까지 징발하여 겨우 1만5천명을 얻었으나 그 부족되는 3천명은 어디서 징발하겠습니까. 동녕부에서 관할하는 여러 성과 동경로(東京路) 연해 주현에도 초공 수수가 많이 있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3천명을 징발하고 보내어 보충하여 주십시오. 저희 나라 군관들은 일찍이 진도·탐라·일본을 정벌하는 싸움에서 여러번 전공을 세웠으나 아직 조정의 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번의 공을 추가하여 등록하고 김방경을 원수부 구당(句當:담당하고 관장함)에 참예하게 하고, 박지량(朴之亮) 등 10명은 총관(摠管)으로, 조변(趙弁)등 10명은 천호(千戶)로, 김천록(金天祿) 등 20명은 총파(銃把)로 임명하고, 또 박구(朴球)·김주정(金周鼎)에게는 호두패(虎頭牌)를 하사하시어 앞으로의 충성을 권장하여 주십시오」하였다. (제주문화방송 「속탐라록」, 1994 발췌)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451
저자명
정인지 외
소장처
국사편찬위원회
조회
27
Link
http://db.history.go.kr/KOREA/item/level.do?itemId=kr#detail/kr_029_0020_0110_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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