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議政 南九萬 등이 引見入侍하여 犯越罪人을 處斷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1686-05-1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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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로 보면 결단코 용서해 주어야 할 이치가 없으나 북쪽 땅은 다른 도와 달라 백성들의 살아갈 길이 어려워 굶주림과 추위에 쫓겨 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금지하는 법을 어긴 일이니, 그 정상 역시 불쌍하다. 그 많은 죄인을 차마 모조리 죽일 수 없으니, 자문 가운데 든 총 쏘기를 처음 주장한 자인 박승학(朴承鶴)은 일체로 사형으로 논죄하고, 그 나머지는 특별히 사형을 감해 제주(濟州)로 정배(定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