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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잠수어민의 활동양상 - 제주 잠수어민을 중심으로 -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탐라문화 33호

조선시대 제주해산물은 향토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시장성은 거의 없었지만 전복과 미역은 언제나 판로가 확보되어 있었다. 미역 때문에 제주에서는 흉년을 이길 수 있었고 현금수입원이 거의 없었던 제주관아에서는 미역을 팔아 필수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미역은 아주 특별하였고 그 중요성 때문에 관에서는 여러 가지 명목으로 수탈을 자행하여 그 원성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되었다. 한편, 조선 초기 전국에서는 선상활동을 하며 해산물 진상을 담당하고 있는 포작(鮑作, 浦作)이 있었다. 이들은 각 지명에 따라서 전라포작, 충청포작, 경상포작, 제주포작으로 부르고 있었는데 포작선을 타고 전복과 고기잡이를 하며 각종 진상 해산물을 봉진하는 어민이었다. 이들은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여러가지로 수탈을 당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긴 전쟁과 언제 징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분을 속였고 숨어서 어업을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어민들의 활동양상은 임진왜란 이후 크게 변화하여 지금과 같은 반농반어 형태가 정착되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제주에서는 해산물 진상역을 담당하는 포작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8세기 중반 대정현 하모슬리 호적중초와 일과리 호적중초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들의 신분은 중앙관청에 소속된 공노비였다. 포작들은 1791년 이후 역이 휠씬 가벼워졌으며 19세기에 진입하면서 그 역에서 해방되었다.

유형
논문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08
저자명
김수희
소장처
KCI
조회
21
첨부파일
조선시대 잠수어민의 활동양상 - 제주 잠수어민을 중심으로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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