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포창(羅里舖倉)을 다시 설치하라고 명하고, 조진관(趙鎭寬)과 서용보(徐龍輔)를 구관 당상(句管堂上)으로 차임하고 이어서 서용보를 비변사 당상으로 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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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제주사일반
우의정 윤시동이 아뢰기를,
“지금 탐라(耽羅)에 진휼하는 일로 인하여 해마다 곡식을 운반하느라 백성과 고을이 모두 수고스럽기 때문에 성상께서는 매번 육지와 섬이 둘 다 편리하게 하는 일에 진념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의 백성을 구제해 살리고자 하면 배를 띄워 곡물을 수송하는 폐해가 자연히 연해읍(沿海邑)의 백성에게 돌아가게 되므로 실로 폐단을 바로잡을 좋은 계책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