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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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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부사(東萊府使) 윤장렬(尹長烈)이, 차왜(差倭)가 장흥(長興)과 강진(康津) 두 고을의 표류민을 영솔하여 온 데 대해 급히 장계(狀啓)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동래 부사의 장계에, “방금 부산 첨사(釜山僉使) 홍용건(洪龍健)의 치통(馳通)을 받아 보니, ‘차왜인 등씨영(藤氏榮) 평정행(平定行)이 우리나라 표류민을 영솔하여 와서 기장현(機張縣) 무지포(武知浦)에 도착하였습니다. 바람을 만나 표류하게 된 연유를 물어보니, 강진 신지도(薪智島)의 표류민이 고하기를 「저희들 8명이 물고기를 교역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 울산(蔚山)의 방어진(魴魚津)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바람을 만나 떠내려가 일본국 장문주(長門州) 뇌호기포(瀬戶崎浦)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곳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을 주고 본주의 부중(府中)으로 데리고 들어가니, 거기에서 띠를 갖춘 청목면(靑木綿) 첩장의(貼長衣) 각 1벌(領), 유삼(油衫 비옷) 각 1건, 사립(蓑笠 도롱이와 삿갓) 각 1닢(立), 연죽(烟竹) 각 1개, 말목(襪木 버선 만드는 무명) 각 3자를 선물로 주고, 삼판(杉板)도 고쳐 주었습니다. 장기도(長崎島)의 부중에 도착하자 제주(濟州)의 표류민 6명과 덕원(德源)의 표류민 5명이 저희보다 먼저 그곳에 있었는데, 밥통과 물통 각 1좌(坐), 밥솥 2좌, 소반과 사기 접시 각 1닢, 사기 중발(中鉢)과 초석(草席) 각 2닢, 채도(菜刀 채칼) 1자루, 남초갑(南草匣)과 연죽 각 1개, 백목(白木 흰무명) 7필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함께 체류하였는데, 두 개의 범죽(帆竹)과 철로 된 질정(蛭釘) 120개, 초둔(草芚) 50번(番), 풍석(風席) 18닢, 황죽(篁竹) 14개, 목정(木碇) 1좌를 아울러 갖추어서 내주었습니다.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19년 (1795)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31
Link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I&jwId=G19&moId=070&daId=220&gaLid=265&gaId=&yoId=&ilId=&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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