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암행 어사 정만석(鄭晩錫)이 복명하여, 중희당(重熙堂)에서 소견(召見)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내가 정만석에게 하교하기를, “경유한 연로의 고을에서 수령들은 잘 다스리고 있으며, 또 백성들의 사정은 과연 얼마나 황급하던가?” 하니, 정만석이 아뢰기를, “서계와 별단에서 이미 진달하였습니다만, 진도(珍島)에는 굶어 죽은 사람이 호남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무슨 이유로 진도에 유독 이렇게 많은 것인가?” 하니, 정만석이 아뢰기를, “작년에 환곡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년 봄에 실로 구제하여 살릴 길이 없어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민정(民情)을 들어보니 그래도 시임 군수(郡守)를 탓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