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감사 이서구(李書九)가 제주(濟州)로 이전(移轉)할 곡물이 후풍소(候風所)에 도착한 상황과 해신제(海神祭)를 설행한 상황에 대해 급히 장계(狀啓)로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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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에, “제주로 이전할 곡물을 영운(領運)할 차사원(差使員)인 용담 현령(龍潭縣令) 원회진(元晦鎭)의 첩정(牒呈)에 ‘부안(扶安)의 미(米) 150섬, 조(租 벼) 200섬, 피모(皮牟) 300섬을 실은 배 2척(隻), 고부(古阜)의 미 200섬, 피모 300섬을 실은 배 1척, 무장(茂長)의 미 350섬, 조 500섬, 피모 1000섬을 실은 배 3척, 영광(靈光)의 미 300섬, 조 400섬, 피모 2000섬을 실은 배 4척, 나주(羅州)의 미 500섬, 조 600섬, 피모 1800섬을 실은 배 7척, 함평(咸平)의 미 200섬, 조 300섬, 피모 1000섬을 실은 배 3척, 순천(順天)의 조 700섬, 피모 600섬을 실은 배 3척, 보성(寶城)의 조 300섬과 피모 400섬을 실은 배 2척, 합계 미 1700섬, 조 3300섬, 피모 7000섬이고, 이상 도합 각 곡물 1만 2000섬과 이를 실은 배 25척을 우도(右道)의 독운 차사원(督運差使員)인 무주 부사(茂朱府使)와 좌도(左道)의 독운 차사원인 낙안 군수(樂安郡守)가 1월 18일부터 22일까지 고달도(古達島)의 도회소(都會所)에다 차례로 영솔해 와서 넘겨주었습니다. 대축(大祝)인 남평 현감(南平縣監)이 향축(香祝)을 받들어 모시고 여러 향관(享官)과 함께 들어와서 고달도에 단유(壇壝)를 정갈하게 쌓고 해신제를 금년 1월 24일에 정성을 다해 설행하였습니다. 각 배의 곡물을 일일이 점검한 뒤에 순풍(順風)을 기다려 배를 출발시킬 계획입니다.’ 하였습니다. 각 읍(邑)에서 배에 실어 보낸 이후로 연이어 풍설(風雪)을 만나 비록 한꺼번에 일제히 도착하지는 못하였지만, 거의 다 기일에 맞춰 도착하였으니 참으로 매우 다행입니다. 순풍을 기다려 배를 출발시킨 날짜와 도착한 상황에 대해서는 보고가 오는 대로 계속해서 보고할 계획입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