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모궁(景慕宮)에 나아가 전배(展拜)하고 도로 관기교(觀旂橋)에 이르러, 공경히 맞이한 유생과 궁계(宮契)의 유생은 응제(應製)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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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제주사일반
익선관에 곤룡포를 갖추고 여(輿)를 타고 협양문(協陽門)과 건양문(建陽門)을 나갔다. 동룡문(銅龍門)에 이르러, 내각 제학 정민시(鄭民始)에게 하교하기를,
“누국(漏局)을 참으로 다 개수하기는 어려우나, 금루관(禁漏官)이 입직(入直)하는 곳은 실로 기울어질 우려가 있으니 이곳은 속히 개수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