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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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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가 있었다. 이조 판서 서유방, 참판 이재학, 참의 이면응, 병조 판서 김문순이 나왔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서매수(徐邁修)ㆍ이수함(李壽咸)을 승지로, 이동직(李東稷)을 집의로, 김회빈(金晦彬)을 장령으로, 지덕빈(池德斌)을 지평으로, 신대윤(申大尹)을 교리로, 이우진(李羽晉)을 부교리로, 이서구(李書九)를 형조 참판으로, 이의필(李義弼)을 예조 참의로, 박용원(朴龍源)을 한성부 주부로, 조양진(趙壤鎭)ㆍ이지형(李之珩)을 전적으로, 유의(柳誼)를 동지의금부사로, 이재함(李在咸)을 서부 도사(西部都事)로, 조시순(趙時淳)을 나주 목사로, 송수연(宋守淵)을 남원 부사(南原府使)로, 이희대(李喜大)를 하동 부사(河東府使)로, 유갑기(柳甲基)를 풍천 부사(豐川府使)로, 이정서(李廷書)를 금산 군수(金山郡守)로, 이동야(李東野)를 전주 판관으로, 홍이조(洪履祚)를 제주 판관(濟州判官)으로, 정택창(鄭宅昌)을 고성 현령(固城縣令)으로, 홍호원(洪浩源)을 구례 현감(求禮縣監)으로, 김양근(金養根)을 현풍 현감(玄風縣監)으로, 이경심(李敬心)을 봉화 현감(奉化縣監)으로, 한재중(韓在中)을 송라 찰방(松羅察訪)으로, 이명기(李命基)를 장수 찰방(長水察訪)으로, 이오진(李五鎭)을 이인 찰방(利仁察訪)으로, 박능원(朴能源)을 교검(校檢)으로, 박시수(朴蓍壽)ㆍ김약련(金若鍊)ㆍ이인채(李寅采)를 전적으로, 이연필(李延弼)을 내금장(內禁將)으로 삼고, 판교(判校) 이현채(李顯采)와 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 김홍운(金洪運)을 서로 바꾸었다. - 박용원, 조양진, 이지형은 모두 벼슬길에서 떨어진 지 가장 오래된 사람이고, 이재함은 추가로 써넣어 비하(批下)한 것이며, 박능원, 박시수, 김약련, 이인채는 모두 소통하여 단부한 것이며, 이연필은 소통한 것이다. -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17년 (1793)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7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17_04A_28A_00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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