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감사 권엄(權)을 엄하게 추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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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아뢰기를, “근래에 전 우참찬 이갑(李)이 아뢴 내용으로 인하여 제주(濟州)의 공마(貢馬)를 올려보낼 때 양호(兩湖)에서 백성에게 거두어들이는 폐단을 도신과 제주 목사(濟州牧使)가 상의하여 개혁한 뒤에 장계로 보고하라고 공문을 보내 알렸습니다. 방금 전라 감사 권엄의 장계를 보니 제주 목사 이철운(李喆運)의 첩정(牒呈)을 낱낱이 거론하여 아뢰기를, ‘공마의 숫자가 일반적인 해에는 288필이고 1년씩 걸러서 대대적으로 올려보내는 해에는 588필인데, 종전에 압령(押領) 등 각종 명목으로 정해서 보낸 인원은 18명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들에게 견군까지 겸해서 행하도록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숫자를 더 정해서 보냈습니다. 이제 견군 1명이 말 5필씩을 끌고 가도록 간략하게 인원을 정한다면, 올해부터 시작하여 일반적인 해에는 58명을 습마군 중에서 돌아가며 정해서 보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