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판중추부사 김종수(金鍾秀)가 상소한 데 대해, 사관을 보내 연석의 하교로 하유(下諭)하고 이어서 그의 상소를 돌려주게 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상소의 대략에, “신이 늦게야 이가환(李家煥)의 소본(疏本)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섬뜩하고 머리털이 곤두섰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숙종대왕(肅宗大王)의 성대한 덕행과 업적은 사서(史書)에 이루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역(逆)과 순(順), 사(邪)와 정(正)을 가장 엄격히 구분하여 후손에게 편안히 살 계책으로 남겨 주신 일은 비유하자면 마치 하늘 한가운데에 밝은 해가 떠 있어 도깨비도 정체를 숨길 수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흉악한 이잠(李潛)의 상소가 들어오던 날에 그의 측량하기 어려운 말들이 인자하신 어버이와 효성스런 자식 사이인 두 분 성상을 이간하고 한 시대의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하들을 도륙하려는 계책에서 전적으로 나왔음을 통촉하시고서는 즉시 그에게 법을 적용하셨으니, 이 일은 더욱 광명정대하고 과감한 조치였습니다. 김일경(金一鏡), 박필몽(朴弼夢), 이인좌(李麟佐), 정희량(鄭希亮) 등의 변란이 발생하자, 온 나라 신민들이 전왕(前王)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대성인(大聖人)께서 후일을 깊이 걱정하고서 내린 원대한 조치가 대단히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음을 더욱 깨달았습니다. 선대왕의 연석의 하교 가운데 ‘기미와 조짐을 막기 위한 의도였다.〔防微杜漸〕’라는 네 글자가 이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가환이 아무리 흉악한 심보를 대대로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그도 선조(先朝)의 한 신하인데,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살면서 어떻게 감히 ‘나라를 위해 충성하기를 원하였습니다.〔爲國〕’,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殉身〕’라는 등의 말을 글로 써서 전하의 앞에 올린단 말입니까. 세도(世道)를 생각하면 곧바로 통곡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17년 (1793)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9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17_01A_29A_00070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