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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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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 감사 정민시(鄭民始)가 제주(濟州)로 이전할 곡물을 차사원을 정하여 도회소(都會所)가 있는 고을의 후풍소(候風所)로 거느리고 가서 넘겨주게 한다고 급히 장계(狀啓)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장계에, “이번에 제주로 곡물을 이전하라는 명은 특별히 섬의 기근을 진휼(軫恤)하는 깊은 뜻에서 나왔고 교귀(交龜)하기 전에 충심으로 힘써 조처하라고 책면(責勉)하신 것입니다. 신이 지금 놀라고 두려운 가운데에서 간곡한 하교를 받들었으니 더욱이나 감히 힘과 마음을 다하여 열심히 봉행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전교대로 진휼 물자인 피모(皮牟) 1만 섬과 재해로 인하여 감(減)한 관수곡(官需穀)의 대미(代米) 305섬을 칠산(七山) 이하의 선로(船路)가 편리하고 가까운 곳에 적절히 헤아려 분배하였습니다. 영광(靈光)에 피모 1500섬, 함평(咸平)에 피모 1000섬, 무안(務安)에 피모 1000섬, 나주(羅州)에 피모 1500섬, 영암(靈巖)에 피모 1000섬과 미 150섬, 해남(海南)에 피모 1000섬과 미 155섬, 장흥(長興)에 피모 500섬, 강진(康津)에 피모 1000섬, 보성(寶城)에 피모 500섬, 순천(順天)에 피모 1000섬을 구획하고 관문을 발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주로 곡물을 이전할 때에는 으레 나리포창(羅里舖倉)의 곡물을 들여보냈으나 누차 흉년을 겪어 지금은 해당 창에 보관된 곡물이 없으므로 각 아문의 곡물을 우선 변통하여 들여보냅니다. 지금 세모(歲暮)가 다 되어 곡물 수송이 시급하므로 무주 부사(茂朱府使) 조시순(趙時淳), 김제 군수(金堤郡守) 이동야(李東野)를 전라좌도와 전라우도의 독발 차사원(督發差使員)으로 차정(差定)하고 밤낮없이 독려하고 신칙하여 도회소가 있는 고을의 후풍소로 거느리고 가서 넘겨주게 하고, 영운 차사원(領運差使員)은 흥덕 현감(興德縣監) 조화석(趙華錫)으로 차정하여 어떤 일이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봉행하라는 뜻으로 엄히 신칙하였습니다. 각 읍의 선적과 발송 날짜를 정하고 일제히 도착한 후 향축을 청하여 배가 떠나는 도회소와 배가 도착하는 제주에서 날을 가려 해신제(海神祭)를 설행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이상의 연유(緣由)를 우선 급히 아룁니다.” 하였다.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16년 (1792)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7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16_12A_23A_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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