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차자(箚子)를 올린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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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자의 대략에, “신은 비록 곧 죽을 목숨이지만 없어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으니, 나랏일을 염려하는 마음뿐입니다. 신이 수원에 있을 때 죄인 김우진(金宇鎭)을 압송하여 기호(畿湖) 지방에 이르렀다는 것을 들었고, 또 비변사의 공사(公事)로 인해 제주목(濟州牧)에서 등보(謄報)한 것을 보니 역적 김우진이 바다를 건너 육지로 들어온 지 이미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노정을 가지고 계산해 보면 기호 지방에서 도성까지의 거리가 100여 리에 불과한데, 그동안 날을 보낸 것이 4, 5일이나 됩니다. 걸음이 느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100여 리를 갈 수 있으니, 4, 5일이 걸렸다는 것은 결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극악한 역적을 압송해 오는데 어찌 걸음을 갑절로 빨리해서 오는 방도만을 쓰겠습니까. 그런데도 뒤쪽에서 온 자와 전하가 계신 쪽에서 온 자에게 물어보건대 모두들 죄수를 붙잡아오는 자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하였으니, 신은 이 점에서 더욱 의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죄인이 땅을 뚫고 들어갔다고 하자니 천하에 어찌 그럴 리가 있겠으며, 교지를 내려 중도에서 일부러 풀어 주었는가 하고 의심하자니 성세(盛世)에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럴 리도 없고 그런 일도 없었는데 죄인의 자취가 보이지 않으니, 백번 생각해 보아도 끝내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