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捕校) 이인하(李仁夏) 등은 원지(遠地)에 충군(充軍)하고, 의녀 2명은 절도(絕島)에 여종으로 삼으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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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가 아뢰기를, “하교하신 대로 내의녀(內醫女)로서 내국(內局)에 출두하지 않은 3명과 기둥서방 등을 모두 잡아들여 끝까지 스스로 출두하지 않은 곡절을 엄히 곤장을 쳐서 조사하였더니, 포교 이인하는 공초(供招)하기를, ‘의녀 단섬(丹蟾)이 면역(免役)하여 데리고 살았습니다. 전에 사진(仕進)했던 의녀들을 내국에 도로 소속시킨다는 소식을 듣고 근기(近畿)에 내려갔다고 공초를 바쳤는데, 죄받아 죽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였고, 포교 장봉석(張鳳錫)은 공초하기를, ‘종섬(終蟾)이 면역하여 데리고 살았는데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말하였습니다. 당초 말을 꾸민 데에 대해서는 만번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하였고, 월하선(月下仙)은 고향으로 내려간 것이 확실하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