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목(濟州牧)에서 봉진(封進)하는 말에 대해 신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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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시가 아뢰기를, “제주목에서 봉진한 말 6필(匹)이 올라왔는데, 간심하였더니 어승(御乘)으로 거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처음 봉진한 말에 비하여 조금도 낫지 않습니다. 거행을 소홀히 한 것이 너무도 놀라우니 해당 목사 이홍운(李鴻運)을 그 지역에 정배하고, 해당 목관(牧官) 역시 잡아 와서 엄히 곤장을 친 다음 원지에 충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여, 전교하기를, “마정(馬政)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그런데 근래에 거의 말도 안 되게 운영이 되는 까닭에, 참으로 내가 타려고 해서가 아니라 아울러 시험해 보려는 뜻에서 별도로 봉진하라는 명을 특교로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초기를 보니, 거행한 것이 매우 놀랍다. 그러나 사리로 헤아려 볼 때에 어찌 숨기고 봉진하지 않았을 리가 있겠는가. 영(令)을 제대로 실행하는 것과 곡절에 대해 경은 각별히 먼저 엄히 조사한 뒤에 다시 기한을 뒤로 물려 주되, 세공(歲貢)을 봉진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이때를 기다려 내사복시(內司僕寺)의 승마(乘馬)에 알맞은 말을 엄히 신칙해서 봉진하게 하라. 그때에도 또 힘써 노력하지 않으면 처음 하교에서 처분한 대로 거행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