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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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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 좌수사 이건수(李健秀)가 유구(琉球)에서 표류해 온 사람들을 다시 문정(問情)한 것에 대해 치계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장계에, “흥양현(興陽縣) 삼도(三島)에 표류해 온 유구국 배의 문정관(問情官)인 우후(虞候) 심경민(沈景民)의 첩정에, ‘그가 또 「송판을 산다.〔買松板〕」는 세 글자를 쓴 것으로 보면 상선(商船)임이 틀림없고, 돌아갈 방향에 대해 이리저리 글로 써서 물었더니 글 뜻을 몰라 글로 써서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섬사람에게 건령귀(乾靈龜)를 빌려서 보여 주었더니, 배 안의 7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서로 떠들며 모두 기뻐하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손가락으로 동남쪽을 가리키며 「배편으로 돌아가겠다. 묘진사 방향이다.〔船上歸卯辰巳〕」라는 여섯 글자를 써 보였고, 돛대의 궁죽(弓竹)을 손으로 가리키며 또 「대나무 12개〔竹十二本〕」라는 네 글자를 써 보였습니다.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글로 써서 보인 뜻으로 짐작해 보면, 궁죽을 고쳐 배를 타고 돌아가고자 하는 뜻이 분명하였습니다. 묘진사는 필시 저들 나라가 있는 곳의 방위일 터인데 윤도(輪圖)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보면 묘진사 방향은 제주(濟州) 부근일 듯합니다. 그런데 본도(本島)에서 제주까지는 비록 연안(沿岸)의 호송로가 있으나 제주에서 유구까지는 그 뱃길도 모를뿐더러 호송하여 넘겨주는 일은 실현 가능성이 만분의 일도 없습니다. 서책은 지방관이 10장을 이미 모사하여 올려보냈습니다.’ 하였습니다. 책자의 첫 번째 장에 ‘대판회도(大板繪圖)’라고 쓰여 있고, 열 번째 장에 또 ‘대일본연대기(大日本年代紀)’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면 이는 일본국에서 인쇄한 것이 틀림없을 터인데 무슨 연유로 유구에 유입된 것인지 매우 괴이하고 의아스러운 일입니다. 돌아갈 방향은 과연 제주를 경유하니, 장차 본도에서 제주에 넘겨주어야 할 형세입니다. 삼가 조정의 처분을 기다려 거행할 계획입니다.” 하였다.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14년 (1790)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9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14_07A_29A_00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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