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참의 김이성(金履成)이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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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의 대략에, “아, 통분스럽습니다. 병오년(1786, 정조10) 5월과 9월의 변고(變故)를 오히려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가 있는데도 복수하지 못하고 역적이 있는데도 성토하지 못한 채 헛되이 세월만 보내며 울분을 삭힌 지 3, 4년이나 되었으니, 이는 모두 조정의 신하가 성실하지 못한 죄입니다. 그리하여 윤리는 결딴이 나고 점점 금수(禽獸)의 지경으로 빠져 들었으니, 뜻이 있는 선비와 성실한 신하들의 통분과 개탄은 어찌 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성상께서 ‘확실하게 지적할 만한 의문점이 없다.’라고 하교하셨기 때문에 감히 억지로 간쟁(諫爭)하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도 지난달 자전(慈殿)의 하교에서 재삼 자세하고 간곡하게 말씀하시고 명확하게 지도해 주시어, 성토를 지체한다고 책망하시고 사형에 처하도록 의율(擬律)하셨으니, 뭇 신하들이 어물어물한 죄는 이에 이르러서 더욱 피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