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문(仁政門)에 나아가 조참(朝參)을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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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정랑(戶曹正郞) 구응(具膺)의 소회에, “나라의 재정이 넉넉한지 부족한지 여부와 백성들의 생업이 쇠잔한지 번성한지 여부는 오로지 전정(田政)에 달려 있고, 제언(堤堰)을 만들고 보(洑)를 쌓으며 황무지를 개간하고 진전(陳田)을 기경하는 것은 또 전정 가운데 가장 긴요한 일입니다. 조정에서 그동안 애써서 법을 만들어 감독하고 신칙하였는데도 근년 이래로는 곧 형식적인 것이 되어 버려 유명무실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익을 볼 수 있는 제언이 수축된 적이 없고 본래 비옥한 토지가 많이 황폐되어, 전결(田結)이 줄어들 뿐 늘어나지는 않고 세입이 이에 따라서 점차 줄어들게 만드니 어찌 크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