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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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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耽羅)에 윤음(綸音)을 내렸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하교하기를, “우리나라가 땅이 좁아서 도(道)는 여덟 개가 있고, 주(州)ㆍ부(府)ㆍ군(郡)ㆍ현(縣)은 겨우 360개 남짓으로 별처럼 벌여 있고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어서 지도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리하여 수재나 한재로 인한 기근이 있더라도 관할하기가 매우 편리한데, 유독 탐라 한 지역은 바다 밖에 치우쳐 있어 육로(陸路)가 거의 1000여 리나 되고 또 해로(海路)가 그보다 배나 되므로 소식이 경사(京師)에 들리기 어렵고 위무(慰撫)하는 것은 단지 관장(官長)에게 맡기고 있다. 예사로운 계독(啓牘)이 올라오는 데에도 걸핏하면 반년이나 걸리므로 섬 백성들의 질고(疾苦)와 우락(憂樂)을 모두 알 수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조정에서 백성을 회유(懷柔)하는 은택이 섬과 육지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이겠는가. 올가을에 팔도에 큰 풍년이 들어 묘당(廟堂)에서 황정(荒政)을 논의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밤낮으로 근심하는 것도 조금은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지난번에 동지 이후에야 수신(守臣)이 비로소 고을에 기근이 들었다고 보고해 왔으니, 이에 한밤중에도 잠 못 들고 일어나 앉아서 거리가 먼 것을 더욱 탄식하였다. 만약 탐라가 바다가 아니고 육지이고 멀다고 하여도 북쪽의 6진(鎭)과 서쪽의 7읍(邑) 정도만 되더라도 풍년이 들었는지 흉년이 들었는지에 대해 어찌 이렇게 소식이 늦을 수 있겠는가. 기근이 들었는데도 내가 알지 못하고, 백성이 곤궁한데도 구제하지 못하였다. 섬의 백성들도 나의 자식인데 그대들의 부모가 되어서 부모의 책임을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8년 (1784)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9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08_11A_30A_0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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