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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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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각(誠正閣)에서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내가 이르기를, “어제 초혼(初昏) 때 내린 전교(傳敎)를 어찌하여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반포하였는가?” 하니, 영의정 서명선(徐命善)이 아뢰기를, “3경(更) 후에야 신이 비로소 보았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근래 정원(政院)이 거행하는 것이 어찌 이와 같이 태만하고 소홀한가. 심지어 어제 제주(濟州)의 일에 대해 서계(書啓)하면서 또한 ‘환도강(還渡江)’으로 쓰기까지 하였다. 바다와 강도 분별하지 못하여 이렇게 잘못 써서 황공하여 대죄(待罪)하는 일이 있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과연 말이 되는가.” 하니, 서명선이 아뢰기를, “이재학(李在學)과 같은 자는 노련하다고 할 만한데, 어찌하여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 내가 이르기를, “어제 좌직(坐直)은 홍명호(洪明浩)였다. 그러나 이재학과 서유방은 정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점차 처음만 못하고 매사가 오히려 생소하니, 참으로 이상하다.” 하였다.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5년 (1781)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7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05_08A_13A_0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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