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濟州)의 세 고을에 윤음(綸音)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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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하기를, “아, 탐라(耽羅) 한 섬은 천리 바다 밖에 위치하여 귤과 유자를 공물로 바치는 것은 하(夏)나라 때의 양주(楊州)와 유사하고 해마다 좋은 말을 바치는 것은 한(漢)나라 때의 대완(大宛)과 유사하다. 검은 수소로써 희생(犧牲)을 갖추고 비자(榧子)를 제기(祭器)에 담으며, 또한 빈주(蠙珠), 모혁(毛革), 죽목(竹木), 지전(芝箭)의 등속으로 기용(器用)의 자료가 되고 약재(藥材)로 쓰일 수 있는 것도 손가락으로 이루 다 꼽을 수 없다. 그곳의 백성들은 돌을 모아 담장을 쌓고 띠풀을 엮어 지붕을 만들며, 풍속이 어리석고 검소하면서도 예양(禮讓)이 있으며, 질병은 적고 장수하는 사람은 많으니, 해도(海島) 가운데 한 도회지이다. 다만 토지가 척박하여 보리, 밀, 콩, 조만이 생산되고 경제적인 생활 수단을 배로 운송하는 것에 의지하고 있으니, 아, 위태롭고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