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유안핵순무시재 어사(慰諭按覈巡撫試才御史) 심낙수(沈樂洙)를 특별히 승진시켜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삼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폐막(弊瘼)은 편의에 따라 바로잡고, 창고를 설치하는 문제는 묘당에서 내게 물어 처리하게 하며, 제주도 유생(儒生)의 입격한 시권(試劵) 중 수석을 차지한 사람이 지은 것을 외각(外閣 교서관)에서 인쇄하여 보내게 하고, 무과(武科)에 응시한 사람 중 급제(及第) 자격을 준 사람과 문과(文科)에서 입격한 사람은 내년 봄에 올려보내 동시에 창방(唱榜)할 수 있도록 하며, 전(前) 목사(牧使) 이철운(李喆運)은 의금부로 잡아오거든 엄히 형추(刑推)하여 공초(供招)를 받은 뒤에 법에 따라 엄히 다스리고, 수령의 학대를 도와 백성을 못살게 군 장교와 아전은 곤장을 쳐서 엄히 다스리며, 양지온(梁之蘊)은 더욱더 엄히 처리하고, 구렁을 전전하다 죽어 간 사람이 가장 많은 곳에 고아와 과부를 모아 놓고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내며, 3개 읍(邑)의 기민(饑民)은 마음을 다해 구제하고, 안핵(按覈)에 대한 장본(狀本)은 시원임 대신(時原任大臣)에게 돌려가며 보여 주라고 명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