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조가 죄인 이현대(李顯大) 등의 초공(草供)으로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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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가 아뢰기를, “죄인 이현대에게 추문(推問)하니, 공초하기를, ‘저는 제주의 가리(假吏)로 행상(行商)을 생업으로 삼았습니다. 대정(大靜)의 접경에 다다르니 대정 사람인 송성창(宋成昌)이 와서 간청하기를, 「우리 집에 거접(居接)하고 있는 죄인 김우진이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전하고자 하는데, 그대는 이번에 은진(恩津)으로 행상을 나갈 것이니 물화(物貨)를 처리한 뒤에 방향을 바꾸어 다시 경성으로 가서 김용궁(金龍宮)의 집을 찾아 서찰을 전해 주면 그곳에서 150여 냥을 줄 것이니 돌아오는 편에 가지고 오면 30냥을 수고비로 주겠다.」 하므로, 그 서찰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정의(旌義)로 이배(移配)된 죄인 김정철(金貞喆)은 제주에 있을 때에 서로 친하였습니다. 8월에 전복(全鰒)을 무역하러 정의에 갔는데 김정철이 한 통의 편지를 내주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서울과 가까운 곳에 가니 이 서찰을 장단(長湍)의 동파(東坡)에 전해 달라.」라고 하고 과연 서찰을 맡겼습니다. 함평(咸平)에 도착하였는데, 배가 치패(致敗)되어 회량(回糧)을 마련하기 어려운 가운데 김우진의 서찰이 아직 주머니 속에 있었으므로 감히 회량을 얻을 계책을 내어 이어 경성으로 향하였습니다. 어제서야 의동(義洞)의 김용궁 집에 가서 그 서찰을 주니, 이르기를, 「그와 같이 흉악한 놈이 어찌 나에게 편지를 썼으며, 또한 어찌 줄 돈이 있단 말인가. 너는 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