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하기를,
“김우진과 같은 죄악을 짓고도 오히려 옥문(獄門)을 살아서 나갈 수가 있겠는가. 그가 원상(院相)의 아들이라고 해서 병신년(1776, 정조 즉위년) 이후로 내가 허물을 씻어 주고 등용한 것이 과연 어떠하였던가. 그의 아비는 조정에 나아와 정승을 차지하였고 그는 측근에 오래도록 두었으니, 작위가 높고도 융성하였으며 은총이 넉넉하고도 두터웠다. 이러한 대우는 같은 조정에서 비교될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옛날에도 드물게 있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