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사직(副司直) 심낙수(沈樂洙)가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상소의 대략에, “신이 북포(北浦)에서 풍향을 살피고 있었는데, 배를 띄우는 날 뭇 백성들이 일제히 호소한 것은 제가 눈으로 본 상황을 성상께 우러러 아뢰어서 죽어 가고 있는 온 섬의 백성들이 혹 연명이라도 하게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었으니, 흐느끼며 호소하여 그 말이 참으로 슬펐습니다. 인구와 곡물의 수량을 비교하여 헤아려 보니, 6만여 인구에게 1만 5000섬의 곡식을 7개월에 걸쳐 분배하여 진휼하였는데, 순차적으로 나누어 주는 횟수를 늘렸습니다. 애초부터 모두가 곡식을 나누어 주어야 할 대상은 아니었지만 결국 곡식을 나누어 주어야 할 대상은 수만 명을 밑돌지 않았습니다. 곡식을 옮겨 주는 것 외에는 한 톨이라도 보태어 지급할 방책이 결코 없으니, 섬의 백성 중 태반이 반드시 죽게 될 형세입니다. 신이 수십 일 동안 후풍관(候風館)에 있을 때에 들으니, 정의현(旌義縣)에서 1월에 보고한 사망자가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본현은 우심재읍이었기 때문에 백급(白給)하거나 환곡을 분급한 것이 다른 현에 비해 많았습니다. 지금 역병이 없는데도 사망자가 이러한데 앞으로 연변(沿邊)에 흉년이 들면 곳곳에서 보기에 참혹한 광경이 벌어질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18년 (1794)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6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18_11A_23A_00030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