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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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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 이해우(李海愚)는 체차하고 승정원에 있던 승지들은 추고하였으며, 이어 탐라(耽羅) 사람들이 일제히 도착하거든 해당 방(房) 승지로 하여금 탐라로 돌아갈 때 먹을 식량을 궐 밖에서 나누어 준 다음 돌아와 아뢰게 하라고 명하였다.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전교하기를, “공물로 진상하는 과일을 가지고 온 탐라의 자제(子弟)들에 대해서, 해당 방 승지로 하여금 그들을 불러 제주도의 농사 형편과 백성들이 겪는 폐단을 묻게 하였는데, 전례대로 돈화문(敦化門)에 가서 물어야 마땅하다. 비록 간편하게 하고자 하더라도 연영문(延英門)에 나가 앉아 거행하는 것이 일의 체모상 당연하다. 어찌 감히 직소(直所)에 태연히 머물면서 사사로이 응대하는 것처럼 군단 말인가.


유형
고문헌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정조22년 (1798)
저자명
일성록
소장처
한국고전종합DB
조회
11
Link
http://db.itkc.or.kr/dir/item?itemId=IT#/dir/node?dataId=ITKC_IT_V0_A22_11A_16A_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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