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감사 이서구(李書九)가 장계하여, “탐라(耽羅)에 이전(移轉)할 곡물은 장흥(長興)에 미(米) 150섬, 조(租) 300섬, 피모(皮牟) 1000섬, 해남(海南)에 미 40섬, 피모 1000섬, 강진(康津)에 미 70섬, 조 200섬, 피모 700섬, 영암(靈巖)에 미 40섬, 조 500섬, 피모 1000섬 등 모두 5000섬을 바다에 가까운 이들 여러 군(郡)에서 마련하여 내도록 한 다음, 별도로 능주 목사(綾州牧使) 조익현(趙翼鉉)을 독운 차사원(督運差使員)으로 정하고 막속(幕屬)을 보내어 감동(監董)하고 신칙해서 신임 목사가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넘겨주게 하였습니다. 짐을 실어 나를 인력은 적절히 헤아려 역량(役粮)을 지급하기도 하고 연역(煙役)을 견감해 주기도 하겠으며, 각 배의 사격(沙格)과 감색(監色)은 원래의 뱃삯 외에 넉넉히 값을 더 지급하겠습니다. 해신제(海神祭)의 날짜는 다음 달 13일로 가려 정했으니, 향축(香祝)은 규례를 살펴 마련해서 내려보내게 하소서. 아직 마련해 낼 방도를 정하지 않은 곡식 및 별도로 내리는 진휼 물자 각 5000섬은 내년 봄에 방도를 마련하여 제때에 받아 운송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이에 전 승지 겸 검교직각 서영보(徐榮輔)에 대한 투비(投畀)를 용서한 다음 쌀을 실어 내는 지방을 두루 다니며 백성들의 폐막을 살피고 곡물을 조사해서 배가 출발하는 곳까지 운반하게 하고, 이어서 해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에 이르러 헌관이 되어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받들며, 복명(復命)하는 날에도 지나오는 연읍(沿邑)에서 백성들을 위유(慰諭)하고 백성의 고통을 상세히 물어 오게 하며, 해신에게 제사 지내는 날짜와 배가 출발하는 날짜에 대해 다시 관상감 제조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내려보내게 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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