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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耽羅)의 고국(古國) 제주(濟州)에 쳔여명의 유지가 모히어 성황을 이룬 위문회 강연(1922년 12월 29일)_1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탐라(耽羅)의 고국(古國) 제주(濟州)에 쳔여명의 유지가 모히어 성황을 이룬 위문회 강연

재외동포위문회(在外同胞慰問會) 순회강연단 일행은 최후로 지스나 십팔일 제주도(濟州島)를 향하여 떠난낫 겨을 일긔의 불순으로 선편이 느저 목포(木浦)에 사일간 두류하다가 이십삼일 오전 이시경에야 비로소 제주성의 산디포(山池浦)에 도착하매 밤이 깁고 풍파가 심함을 불구하고 다수한 유지 제씨가 특히 

 후원회를 조직하야 종선 머리에 환영등을 압세우고 일행이 탓던 긔선의 갑판우에까지 마조나아왓다. 그날 곳 이십삼일 오후칠시에 성내 관덕정(觀德亭)에서 후원단댱 홍순완(洪淳完)씨의 사회 아래 강규언(姜圭彦) 김재선(金在善) 양씨의 합창으로 막을 열고 곳환등을 영사하얏스며 송종현(宋鐘炫)씨의 독창이 잇슨 후 사회발전의 근본요소(社會發展 根本要素)라는 문데로 장덕수씨의 열변이 잇섯고 홍군표(洪君杓)의 독창으로 십시에 폐회하엿는대 텽중은 략천명이오 임회원은 백여명에 달하엿다. 이 디방에서 강연단 일행이 오기를 고대한지 오래엿고 

 여러단톄에서 후원단까지 조직하엿는대 참가한 단톄는 제주청년수양회(濟州靑年修養會) 부인회 기독청년회 탐라협회이엇서다 이십사일 오후에는 제주유지의 주최로 명신학교에서 환영겸 전별의 성대한 연회를 배설하고 주객이 즐기엇다 제주는 본래 탐라(耽羅) 고국으로 육디와 멀니 떠러저 잇서 성활상 불편한뎝이 만흐나 그러나 디방의 긔후가 온화하고 일반이 근금하야 평균생활상태는 륙디보다 우승한 뎝이 잇다 청년수양회에서 여러 가지로 문화운동에 로력하야 한편으로 흉학회를 조직하야 명신학교(明新學校)를 경영하는 대학생이 삼백오십명이며 소비조합을 경영하랴는 계획이 성립되엿다 

 

→2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2-12-29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1
첨부파일
81.탐라(耽羅)의 고국(古國) 제주(濟州)에 쳔여명의 유지가 모히어 성황을 이룬 위문회 강연(1922년 12월 29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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