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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애상(悲慘哀傷)의 주인공(主人公)인 제주해녀(濟州海女)의 생활(生活)(1924년 04월 28일) 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작년부터 충돌과 분쟁이 이러나서 동래군긔장(東萊郡機張) 방면의 어업조합에서는 말하기를 우리조합에 가입치안으면 제주보직((海女)이를 바다 근방에도 발을 못드려 놋게 한다고 하는등 가진 핍박을 바다 오다가 금년에도 사월십륙일이 해조류채취(海藻採取)를 시작하는 법뎡긔일인데 금년은 해조발육 상황이 양치 못하다 하야 아즉 체취하기가 좀 일다고 오는 오월초 하로날부터 시작하게 되야 경상남도내에서 거주하는 제주도 해녀조합원을 총계하면 이천명이고 기타 종업자 천여명을 합하면 약 삼천여명의 해녀들은 두 억개에 대바구니 하나식만 걸머지고 수륙수백리의 원역을 건너와서 자긔들의 생명이나 다름업는 해초를 설취하기 위하야 법정긔일만 기다리고 잇는 중인데 부산어업조합에서는 강제뎍 수단으로 해녀 십여명을 감언리설로 유인하야 조합에 가압케하고 그 가입된 해녀들에게는 법뎡긔일전에 해초채취를 용서한 까닭에 긔일만 기다리고 잇든 해녀들과 서로 충돌이 생겨서 지난 이십사일 아츰에는 해녀이십여명이 부산동삼동(釜山東三洞) 방면으로 지나 가는데 그 디방사람들은 무조건으로 배를 륙디에 끄러올리고 압길을 막으며 행선을 못하게 한일이 잇섯다 그뿐 아니라 인류에 비치못할 욕설과 폭행으로 고통과 압박을 준일이 세상에 발포되게 되얏다 오날까지 수업시 당해오는 고통과 압박은 오날이야 비로소 두줄기의 뜨거운 눔물과 가슴쓰린 우룸소래가 세상에 들리게 되엿다 그 광경을 당한 해녀들의 생각에는 우리 조선사람들은 일본사람들에게 자유를 구속밧고 압박을 당해오는 여디에 더구나 우리 해녀들은 일본사람들의게 압박을 밧고 조선사람들의게도 압박구속을 바드니 이와 가치 구구한 이중생활을 하는 것보담 차라리 이 깁흔바다물 가운데 빠저 죽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심으로 일시는 대혼잡을 일우엇다한다 

눈물을 해상에 뿌리든 해녀일동은 호소할길이 업서서 방황하다가 부산남빈뎡 제주도해녀조합출장소에 물미듯 모여들어 구제하여달라고 애원하든지음에 

년(年)ㇴ히 부채(負債)에 오도가도 못한다고             

해녀들은 눈물을 흘리며 긔자를 보고 하는 말이··​·​

 

 

 

→3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4-04-28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1
첨부파일
154.비참애상(悲慘哀傷)의 주인공(主人公)인 제주해녀(濟州海女)의 생활(生活)(1924년 04월 28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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