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참애상(悲慘哀傷)의 주인공(主人公)인 제주해녀(濟州海女)의 생활(生活)(1924년 04월 28일) 3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우리는 제주도에서 생활이 곤난하야 여자의 신분도 도라보지 안코 늙은부모와 어린자식을 이별하고 머나먼 이천리의 대해를 일엽풍선으로 사고무친촉한 이경 남해안에 출가(出嫁)하야 수십길 깁흔 바다속에 드러가서 디방사람들의 기술로서는 도저히 구셩도 못할 해조류를 채취하야 생활하야 오는 지가 우금 사십여년이 올시다 그러나 디방사람들은 우리를 대할때마다 제주년이니 보작이년이니 하고 사람의 대우를 아니해줍니다 압박에 압박을 바다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내가 힘들이어 어든 물건을 상당한 갑으로 팔지도 못하고 디방문옥(問屋)등의 무리한 수단과 간계에 빠저서 빼앗기듯 주어버리고 문옥들의게 부채만 해마다 더하게 되야 십여년동안으로 디방채주들의게 강제집행이 되야 오도가도 못하고 제주도의 운권만 바라보고 가슴쓰린 눈물만 흘니는 사람도 수다하녓슴니다 가련한 우리들을 누가 구제하여 줄사람이 얻더니 제주도인사의고 심잔력으로 당국의 양해를 어더 대정구년도에 비로서 우리를 구제할 제주도해녀조합이 설립된 후로 우리들은 다대한 편의외 리익을 엇고 디방사람들의게 노예대우를 얼마쯤 면하게 되엿슴니다 그런데 천만의외에 부산동래 이개조합과 울산 오개조합을 합하야 칠개소에 디방어업조합이 성립된 후로는 우리를 디방어업조합에 가입하라고 모든 수단으로 유인함으로 우리는 영영 거절하엿더니 금년에도 이와 가튼 압박을 또 다시 밧게 되엿다고 서름에 북박치엇다

해녀조합(海女組合) 간부총사직(幹部 總辭職) 내막이 복잡한 듯

 그다음 해녀조합에서 력사적 경력이 깁흔 김태호(金泰鎬)군의 말을 드른즉

우리해녀조합의 창립 이래 경우 오개성상을 지난 성적을 볼 것 가트면 수중으로부터 취뎍하는 총액이 대정십년도 공동판매고가 구만여원이고 십일년도에는 십구만여원이고 십이년도에 이십이만여원이고 십삼년도에는 부산 동래 울산이군 일부의 입어디관할(入漁地管轄)내에 약삼십만원 가량 채취될 여망이 잇슴니다 일년간 이만한 성적을 보는 까닭에 이번 문데도 아마 리해관계로 이등조합장(伊藤組合長)이 사표를 뎨출하고 각 신문지상으로 보드래도 조합의 간부일동이 총사직을 한다는 말을 드른즉 내막이 매우 분규한중인대 본조합에서도 전라난도뎡에 교섭한 결과 불원간 해결될 모양이라고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4-04-28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7
첨부파일
154.비참애상(悲慘哀傷)의 주인공(主人公)인 제주해녀(濟州海女)의 생활(生活)(1924년 04월 28일).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