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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행(濟州行)일(一): 권덕규(權悳奎)(1924년 08월 12일) 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캄캄한 그믐밤이라 지척(咫尺)을 분변(分辯)하기 어려우나 어림컨대 차(車)는 만백명장계백(萬百名將階伯)이 최후(最後)의 용맹(勇猛)을 부려 망(亡)하는 백제(百濟)를 꼭다이 장방(粧防)한 황산원(黃山原)을 지나는 듯하다 바른편으로 멀리 지점(地点)되는 계룡산(鷄龍山)은 우주(宇宙)의 요기(妖氣)로운 긔운을 죄다 글어만하 들도업는 소굴(騷窟)을 형성(形成)한 듯하다 아이구 보기실혀 저 계룡산(鷄龍山) 어중이 뜨중이 별별형형색색(別別形形色色)의 것이 그 마귀(魔鬼)이것들이 들끌허서 안된 말로 사람으로도 살수없시된 계룡산(鷄龍山)의 관사(冠詞)를 가진 신도(新都)안, 나는 정(正)말 보기실혀 견딜수 업다 조선(朝鮮)사람이 대륙(大陸)에서 실노(失怒)를 하면 하면 나리쫏기고 쫏기고 하야 몰려드는 반도조선(半島朝鮮)에도 남부조선(南部朝鮮)의 계룡산(鷄龍山), 내남자가 정(正)말로 정가(鄭苛)라 하더라도 그 정가(鄭苛)가 금시(今時)로 나온다 하드라도 나는 정(正)말로 네가 밉다 어떠케든지 조선(朝鮮)사람은 북(北)으로 북(北)으로 경전(硬展)하여야 하겟다 만일 그러치 아니하면 발우 진해만(鎭海灣)에다 도읍(都邑)을 하고 세계(世界)를 통일(統一)한다 하면 모르거니와 그러치 못하야 계룡산(鷄龍山)에 도읍(都邑)을 한다 하면 그때의 조선(朝鮮)은 이씨조선(李氏朝鮮)보다도 말못되는 조선(朝鮮)이다 계룡산정도설(鷄龍山定都說)도 이씨(李氏)가 왕조(王朝)를 앗을때에 정포은(鄭圃隱)가튼 양신(良臣)을 하도 원억(寃抑)히 업신 까닭에 왕조(王朝)의 유신(遺臣)들이 정씨군임설(丁氏君臨說)을 창(創)하야 그 도읍지(都邑地)는 이씨(李氏)가 처음 도읍(都邑)하려 하든 계룡산(鷄龍山)에다 끌어부치어 이씨(李氏)의 부장(不長)하기를 의미(意味)하고 말로 나마 정씨(鄭氏)로 이씨(李氏)를 덥허누르게 한것이다 그리하야 저러케 마귀(魔鬼)의 굴(窟)을 맨들게 한 것이다 그리하면 이조(李朝)는 미래조선(未來朝鮮)의 발전(發展)에도 퍽 장애(障礙)를 준것이라 볼 수 잇다 에어라 정(鄭)가니 이(李)가니 할 것 무엇 잇나 모두가 꿈이지 내가 여긔를 지날 임시(臨時)에 정(正)말 꿈으로 들어갓다 눈을 번쩌뜨니 차(車)는 함열(咸悅) 못미처의 충청남도(忠淸南道) 전라북도(全羅北道)라 쓴 표목(標木)이선 들판을 지나간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4-08-12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2
첨부파일
164.제주행(濟州行)일(一) 권덕규(權悳奎)(1924년 08월 12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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