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영준씨 미거(田永晙氏 美擧)(1925년 08월 14일)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전영준씨 미거(田永晙氏 美擧)

제주도(濟州島)에는 오륙년전(五六年前)부터 각종(各種)의 운동(運動)이 무던히 발달(發達)되엿스나 공설운동장(公設運動場)이 업는 관계(關係)로 학교운동장(學校運動場)을 빌거나 그러치 아니하면 임시(臨時)로 밧(畑)을 세(稅)주어서 각종(各種)의 운동경기대회(運動競技大會)를 열게 되든바 제주면 아라리(濟州面 我羅里)에 거주(居住)하는 전영준씨(田永晙氏)는 원래(元來)부터 그리 큰 부자(富者)는 아니나 독지가(篤志家)로 유명(有名)하던터인데 근반 제주학생친목회 주최(今般 濟州學生親睦會 主催)인 제삼회 축구대회(第三會 蹴球大會)에 자기소유(資己所有)인 제주남성외광장 전이천칠백여평(濟州南城外 廣膓 田二天七百餘坪)이나 되는 광장(廣場)을 임시운동장(臨時運動場)으로 빌려주엇다가 지난 구일(九日) 그 대회상석(大會常席)에서 밧을 제주성내(濟州城內)에 잇는 중앙탐흥회(中央耽興會)에 영구(永久)히 운동장(運動場)으로 기부(寄附)한다는 쾌락(快諾)이 동씨(同氏)의 입에서 떠러짐에 당장(當場)에 모혀잇든 부노급각청년각단체선수(父老及各靑年各團體選手)들까지도 씨(氏)를 위(爲)하야 만세(萬歲)를 불러주고 자동차(自働車)에 태여서 전시내(全市內)에 광고(廣告)하고 동야(同夜)에 경관급각신문기자(警官及各新聞記者)를 입회(立會)식히고 승낙서(承諾書)를 썻다는데 탐흥회회원급일반사회(耽興會會員及一般社會)에서는 씨(氏)를 위(爲)한 목비(木碑)를 새웟고 이 다음 석비(石碑)를 세우리라는데 탐흥회(耽興會)에서는 자회(自會)의 운동장(運動場)으로만 하지 아니하고 제주도(濟州島)의 공설운동장(公設運動場)으로 만들리라더라(濟州)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5-08-14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4
첨부파일
221.전영준씨 미거(田永晙氏 美擧)(1925년 08월 14일).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