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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소년웅변(濟州少年雄辯) 성황리(盛況裡)에 종료(終了)(1925년 08월 18일) 1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소년웅변(濟州少年雄辯) 성황리(盛況裡)에 종료(終了)

기보(旣報) 조선본보양지국주최(朝鮮本報兩支局主催) 전제주소년소녀현상웅변대회(全濟州少年少女懸賞雄辯大會)는 예정(豫定)과 가치 지난 십일일 하오이시반(十一日 下午二時半)에 당지 보교대강당(當地普校大講堂)에서 개최(開催)하고 고원옥군(高元玉君)의 개회사(開會辭)를 비롯하야 각연사(各演士)는 노하(鷺河) 웅변(雄辯)을 토(吐)하야 장내(場內)에 운집(雲集)한 수천(數千)의 관중(觀衆)으로 하여금 환호(歡呼)를 하게 하엿는데 김은애양(金恩愛孃)의『조선(朝鮮)사람들은 경제(經濟)의 파멸(破滅)을 바다북(北)으로 만주(滿洲)와 서백리아(西伯利亞)로 간다』는 말이 불온(不穩)하다 하여 임석(臨席)하엿든 김경부(金警部)가 주의(主意)를 연발(連發)하다가 중지(中止)를 명(命)하매 장내(場內)의 공기(空氣)는 긴장(緊張)하야『이유(理由를 대라』『무지(無知)한 경관주의(警官主意)』등(等) 외치는 소리에 일대수라장(一大修羅場)을 일우엇다가 겨우 진정(鎭定)되어 순조(順調)로 진행(眞行)되고 간간(間間)히 음악무도등(音樂舞蹈等)도 잇섯스며 심판대표 김태민씨(審判代表 金泰旼氏)의 심판발표(審判發表)가 잇슨 후(後) 명예대회장 최원순씨(名譽大會長 崔元淳氏)의 상장급상품수여(賞狀及賞品授與)로 무사(無事)히 폐회(閉會)하엿는바 각연사씨각연제(各演士氏各演題)와 대회(大會)에 의연(義捐)하신 제씨(諸氏)는 여좌(如左)하다더라(濟州)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5-08-18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8
첨부파일
222.제주소년웅변(濟州少年雄辯) 성황리(盛況裡)에 종료(終了)(1925년 08월 18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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