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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명(十名)에 퇴학처분(退學處分)(1926년 07월 18일)(1)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십명(十名)에 퇴학처분(退學處分) 

 

여외(餘外)는 무기정학(無期停學) 

 

쌍방 태도거익강경(雙方 態度去益强硬) 

 

제주공농교 맹휴사건후문(濟州公農校 盟休事件後聞) 

 

제주공립농업교 제일,이학년생도 일동(濟州公立農業校 第一,二學年生徒 一同)이 거육월이십오일(去六月二十五日)에 동교 교장사무취급 류전씨(同校 校長事務取扱 柳田氏)를 배척(排斥)하는 십오개 조건 진정서(十五個 條件 陳情書)를 도당국(道當局)과 학교당국(學校當局)에 제출(提出)하고 동맹휴학(同盟休學)을 단행(斷行)하엿다함은 기보(旣報)한바 이어니와 이래 이십여일(以來 二十餘日)동안 쌍방(雙方)의 태도(態度)가 자못 강경(强硬)하야 해결(解決)될 가망(可望)이 무(無)함으로 동교 산기교유(同校 山岐敎諭)가 급속(急速)히 상광(上光)하야 전남도당국(全南道當局)과 타협(妥協)한 결과(結果) 지난 십이일(十二日)에 돌연(突然)히 학교측(學校側)에서 도(道)의 내훈(內訓)과 학교(學校)의 기정방침(旣定方針)이라 하야 일이학년전부(一二學年全部)에게 무기정학(無期停學)을 명(命)하고 경(更)히 십삼일(十三日)에 제일학년생 김창일외 삼명(第一學年生 金昌鎰外 三名)과 제이학년생 강창거외 오명(第二學年 姜昌擧外 五名)에게 퇴학(退學)을 명(命)함으로 생도측(生徒側)은 극도(極度)로 흥분(興奮)되여 학교(學校)에 그 이유(理由)를 질문(質問)하며 퇴학당(退學當)한 생도(生徒)는 사무실(事務室)에 쇄도(碎到)하야 자못 공기(空氣)가 험악(險惡)함으로 경관(警官)이 즉시출동(卽時出動)하야 해산(解散)식혀다는데 쌍방(雙方)의 주장(主張)을 듯건대 아래와 갓다더라(濟州)

 

전부퇴학(全部退學)도 불사(不辭) 산기교유담(山岐敎諭談)

 

될 수 잇는데까지는 학교(學校)로서도 원만(圓滿)한 해결(解決)을 지을려고하엿스나 생도측(生徒側)의 태도(態度)가 넘어나 강경(强硬)함으로 할 수 업시 최후(最後)로 수모자 십명(首謀者 十名)에게 퇴학(退學) 기타(其他)에게는 무기정학(無期停學)을 명(命)한 것이외다 본래교사(本來 敎師)를 배척(排斥)하야 동맹휴학(同盟休學)을 하는 것이 생도체면(生徒體面)으로 불온(不穩)한 것임으로 금후 생도각자(今後 生徒各自)가 회개(悔改)하고 무조건(無條件)으로 등교(登校)하면 모르거니와 그러치 아니하면 전부(全部)에게라도 퇴학(退學)을 명(命)할수밧게 업지요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6-07-18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5
첨부파일
273. 십명(十名)에 퇴학처분(退學處分)(1926년 07월 18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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