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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명(十名)에 퇴학처분(退學處分)(1926년 07월 18일)(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우리는 초지(初志)가 관철(貫徹)되기 까지는 절대(絶對)로 등교(登校)할수 업스며 만약 일인(萬若 一人)의 희생자(犧牲者)라도 잇스면 단연(斷然)코 동맹퇴학(同盟退學)을 하려는 바입니다

『조선인(朝鮮人)은 야만(野蠻)이라』고 하던 그 입만 보아도 피가 꿀슴니다 물론 교원(勿論 敎員)의 자격(資格)이 부족(不足)하고 다구나 민족적 회욕(民族的 悔辱)을 한 자(者)에게 엇지 교수(敎授)를 바들 수 잇겟슴닛가

선후책(先後策)을 강구(講究) 사회유지(社會有志)들이 

제주공립농업학교동맹사건(濟州公立農業學校同盟事件)은 점차확대(漸次擴大)되어 도저(到底)히 해결(解決)될 서광(曙光)이 무(無)함으로 제주청년회(濟州靑年會)에서는 이에 관(關)하야 토의(討議)한 결과(結果) 교우 학부형 일반유지(敎友 學父兄 一般有志)가 합동(合同)하야 선후책강구회(先後策講究會)를 개최(開催)하기로 하고 위선 사실진상조사위원회 오인(爲先 事實眞相調査委員會 五人)을 선정(選定)하야 학교측(學校側)과 생도측(生徒側)의 태도(態度)와 경과(經過)를 조사(調査)한 후(後) 지난 십사일 하오사시(十四日 下午四時)에 동교 대강당(同校 大講堂)에서 홍순녕씨(洪淳寧氏)의 사회(司會)로 회의(會議)를 진행(進行)하엿는바 질문(質問)과 의견(意見)이 백출(百出)하고 장내(場內)의 공기(空氣)가 자못 긴장(緊張)한 가운데에 좌기사항(左記事項)을 결의(決議)하고 실행위원(實行委員)까지 선정(選定)하엿는데 금후(今後)엇더케 문제(問題)가 전개(展開)될는지 일반(一般)은 매우 주시중(注視中)이라더라

◇ 결의사항(決議事項)

-, 유전교유(柳田敎諭)에게는 교육자(敎育者)의 체면(體面)에 배치(背馳)된 행동(行動)을 근신(謹愼)하고 전비(前非)를 반성사과(反省謝過)하도록 경고문(警告文)을 발송(發送)하야 회답(回答)을 요(要)할 것

, 학교측(學校側)에는 생도(生徒)와 퇴학(退學) 무기(無期)정학(停學)을 취소(取消)하게 하고 생도측(生徒側)에는 즉일(卽日)등교(登校)케 하야 금후(今後)행동(行動)을 근신(勤愼)케할 것

, 문제(問題)가 원만(圓滿)히 해결(解決)되지 아니하는 시(時)는 태도(態度)가 강경(强硬)한 측(側)에 책임(責任)이 잇는 것으로 인(認 )하고 차(此)를 배척(排斥)하는 동시(同時)에 도당국(道當局)에까지 위원(委員)을 파견(派遣)하야 해결(解決)에 노력(努力)할 것

◇ 실행위원(實行委員)

장용견(張容堅) 채수용(蔡洙容) 홍순녕(洪淳寧) 고석종(高錫鍾) 장희순(張禧淳)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6-07-18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2
첨부파일
273. 십명(十名)에 퇴학처분(退學處分)(1926년 07월 18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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