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맹휴사건해결(盟休事件解決) 제주농교사건(濟州農校事件)(1926년 07월 25일)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맹휴사건해결(盟休事件解決) 제주농교사건(濟州農校事件)

제주공립농업학교맹휴사건(濟州公立農業學校 盟休事件)은 쌍방(雙方)의 태도(態度)가 강경(强硬)하야 도저(到底)히 해결(解決)될 가망(可望)이 무(無)함으로 교우 학부형 일반유지(敎友 學父兄 一般有志)가 분기(奮起)하야 중재(仲裁)에 노력(努力)한다 함은 기보(旣報)한바 이어니와 교섭위원 오인(交涉委員 五人)은 지난 십오일 하오이시(十五日 下午 二時)에 동교 신임교장 삼기씨외 직원일동(同校 新任校長 衫岐氏外 職員一同)과 장시간(長時間)동안 의견(意見)을 교환(交換)한 결과(結果) 학교측(學校側)은 무기정학(無期停學)을 취소(取消)하고 퇴학(退學)을 명(命)한 생도(生徒)는 후일 보결(後日 補缺)의 형식(形式)을 밟아 복교(復校)케할 것과 문제인물 류전씨(問題人物 柳田氏)는 금후 언행(今後 言行)을 근신(謹愼)하는 동시(同時)에 일반(一般)에게 사과(謝過)할 것이며 생도측(生徒側)은 즉일(卽日 登校)할 조건(條件)으로 타협(妥協)이 되어 십육일 하오팔시(十六日 下午八時)에 선후책강구회(先後策講究會)에서는 맹휴생도 전부(盟休生徒 全部)를 제주청년회관(濟州靑年會館)에 집회(集會)케하고 교섭전말(交涉顚末)을 보고(報告)하엿더니 생도측(生徒側)은 극도(極度)로 흥분(興奮)하야 류전씨(柳田氏)가 퇴교(退校)키 아니하는 경우(境遇)에는 필사(必死)코 등교(登校)치 못하겟다 하고 태도(態度)가 극(極)히 완고(頑固)함으로 하등(下等)이 낙착(落着)을 보지 못하고 폐회(閉會)하엿는바 십칠일(十七日)에 지(至)하야 경찰당국(警察當局)에서도 간섭(干涉)하기 시작(始作)하야 생도 십여명(生徒 十餘名)을 소환취조(召還取調)하는 등(等) 공기(空氣)는 가일층 험악(加一層 險惡)하엿스나 교섭위원(交涉委員)의 간선(幹旋)과 류전씨(柳田氏)의 진사(陳謝)로 무사해결(無事解決)되엿다더라(濟州)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6-07-25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5
첨부파일
277. 맹휴사건해결(盟休事件解決) 제주농교사건(濟州農校事件)(1926년 07월 25일).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