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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탐방(巡廻探訪) 풍광(風光)이 명미(明媚) 남국(南國)의 정서 일(情緖1)(1926년 10월 27일)1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순회탐방(巡廻探訪) 풍광(風光)이 명미(明媚) 남국(南國)의 정서일(情緖1): 

조선(朝鮮)의 제일도(第一島)

제주일기자(濟州一記者)

제주도(濟州島)는 반도(半島)의 극남단(極南端)에 재(在)한 조선(朝鮮)의 최대도서(最大島嶼)로서 기후(氣候)가 온화(溫和)하야 남국(南國)의 정서(情緖)가 흐르고 풍광(風光)이 명미(明媚)하야 남해중(南海中 )의 낙원(樂園)이라 할만하다 중앙(中央)에 좌립(挫立)한 한라산(漢拏山)은 고(高)가 육천칠백여척(六千七百餘尺)에 달(達)하야 조선(朝鮮)의 제이대산(第二大山)이오 참으로 제주(濟州)의 일대위관(一大偉觀)이다 제주도(濟州島)의 연혁(沿革)을 간단(簡單)히 말하면 고석(古昔)에 고부량 삼신인(高夫梁 三神人)이 지중(地中)에서 용출(涌出)하야 개척(開拓)하고 국호(國號)를 탐라(耽羅)라하야 의연(依然)한 독립국(獨立國)이엿스나 신라시대(新羅時代)에 고하 고청(高夏 高淸)이 신라(新羅)에 조공(朝貢)함을 따라 성주왕자(星主王子)의 작(爵)을 수(授)한바 되엿스며 고려 충렬왕시(高麗 忠烈王時)에 와서 탐라(耽羅)를 개(改)하야 제주(濟州)라 칭(稱)하고 목사판관(牧使判官)을 치(置)하야 통치(統治)하여 오던바 이조태종십년(李朝太宗十年)에 본도(本島)를 삼분(三分)하야 제주대정정의(濟州大靜旌義)의 삼군(三郡)을 합동(合同)하야 제주도(濟州島)라 칭(稱)하고 도사(島司)로서 행정(行政)의 임(任)에 당(當)케 하엿다 삭망(朔茫)한 태평양(太平洋中)의 도서(島嶼)라 자고(自古)로 절도(絶島)의 감(感)이 불무(不無)하엿스나 간금(干今)에는 목포부산대판 방면(木浦釜山大阪 方面)과의 기선출입(汽船出入)이 연락불절(連絡不絶)하며 육상(陸上)에는 자동차편(自働車便)이 유(有)하야 교통(交通)이 자못 편(便)케 되엿슬뿐 아니라 전신 전화 전등등 물질문명(電信電話電燈等 物質文明)이 이기(利器)도 근년(近年)에 설비(設備)되엿다 전도(全島)의 면적(面積)은 백이십일만리(百二十一萬里)인데 동서(東西)가 이백리(二百里) 남북(南北)이 백리(百里)이며 인구(人口)는 작년 십이월말 현재(十二月末 現在) 이십여만명(二十餘萬名)이니 모내군(某內群)은 여좌(如左)하다

-, 호수(戶數) 사만이천일백구십팔호(四二,一九八戶)

-, 인구(人口) 이십만오천사백칠십팔인(二0五,四七八人)

조선인(朝鮮人) 이십만사천삼백십오인(二0四,三一五人)

일본인(日本人) 천백오인(一,一0五人)

외국인(外國人) 오십구인(五九人)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6-10-27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3
첨부파일
304. 순회탐방(巡廻探訪) 풍광(風光)이 명미(明媚) 남국(南國)의 정서 일(情緖1)(1926년 10월 27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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