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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탐방(巡廻探訪) 풍광(風光)이 명미(明媚) 남국(南國)의 정서 일(情緖1)(1926년 10월 27일) 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산업계(産業界)

  ◇ 농업(農業)

본도(本島)는 토지(土地)가 척박(瘠薄)하고 수전(水田)이 태무(殆無)한데 대지주(大地主)가 무(無)하고 거개 자작농(擧皆 自作農)임으로 빈부(貧富)의 차(差)가 현격(懸隔)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생활태도(生活態度)가 균일(均一)하며 소작쟁의(小作爭議)는 볼수도 업다 경지면적(耕地面積)은 전(田)십만사천삼십일정보(一0四,0三一町步) 답(沓) 팔백수십오정보(八九五町步)인데 매석당 이정이반보(每石當 二町二反步)나되며 작년 수확고(昨年 收穫高)는 대맥(大麥) 삼십만석(三十萬石) 속(粟) 삼십만석(三十萬石) 수륙도(水陸稻) 삼만석(三萬石) 대소두둥 잡곡(大小豆等 雜穀) 삼만여석(三萬餘石) 감저(甘藷) 일천여만관(一千餘萬貫)에 달(達)함으로 소농민(小農民)도 그리 곤난(困難)치 아니한 생계(生計)를 도모(圖謀)할수잇다

  ◇ 상업(商業)

본도(本島)는 교통불편(交通不便)의 관계상(關係上) 자연 상업(自然 商業)도 미비부진(微微不振)하더니 근래(近來) 해륙교통기관(海陸交通機關)이 완비(完備)와 대판직항로(大阪直航路)가 개통(開通)된 이래(以來) 제주성내(濟州城內)를 중심(中心)으로 각지(各地)에 상업(商業)이 점차 은성(漸次 殷盛)하야 활기(活氣)를 정(呈)하고 남선(南鮮)의 유수(有數)한 상업지대(商業地帶)로 굴지(屈指)케 되엿다 이출품(利出品)은 수산물(水産物)을 위주(爲主)로 면화(棉花) 관물(冠物) 추용(椎茸) 우피(牛皮) 양말등(洋襪等)인바 연액(年額) 백만원내외(百萬圓內外)에 달(達)하며 이입품(移入品)은 백미(白米) 맥분(麥粉) 면사포(綿紗布) 인촌(燐寸) 석유 기타잡화등(石油 其他雜貨等)인바 연액(年額)이 역백만원(亦百萬圓)에 달(達)한다고 한다

  ◇ 공업(工業)
공업(工業)은 아직 유치(幼稚)하야 목하 자급자족(目下 自給自足)의역(域)을 탈(脫 )치 못하엿스나 농한기(農閑期)를 이용(利用)하야 가정공업(家庭工業)으로 소규모(小規模)의 주조(鑄造) 조선즐관물(朝鮮櫛冠物) 모자(毛子) 양태(涼太) 암건(岩巾) 탕건(宕巾) 망건(網巾)등(等)을 제조(製造)하며 근래 관힐(瓘詰) 패구(貝釦) 양말(洋襪) 주류(酒類) 조면등(繰綿等)의 공장(工場)도 설치(設置)되여 그 산액(産額)도 불소(不少)하야 본도 공업계(本島 工業界)의 신기원(新紀元)을 작(作)하엿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6-10-27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5
첨부파일
304. 순회탐방(巡廻探訪) 풍광(風光)이 명미(明媚) 남국(南國)의 정서 일(情緖1)(1926년 10월 27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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