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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습(突襲)한 폭풍(暴風)에 일가삼구 조난(一家三口 遭難)(1927년 11월 24일)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돌습(突襲)한 폭풍(暴風)에 일가삼구 조난(一家三口 遭難) 

제주서 조난한 사람 일본서 구조 

 ◇처녀(妻女)는 필경참사(畢竟慘死)

전남 제주도 구우면 고산리(濟州島 舊右面 高山里) 고병욱(高炳昱)(五二)과 그의 처 박게실(朴桂實)(三三)과 녀식 고승지(高昇智)(三)가 지난 십월삼십일일에 제주도 한림포(濟州島 翰林浦)장에 갓다가 돌아오는 길에 폭풍을 맛나 그동안 물결이 산갓고 한긔가 몹시도 맹렬한 바다우에서 행방을 분별치 못하고 헤매이던 중에 그의 처 박게실과 승지는 집고 주리여서 그만 바다우에서 죽어버리고 전긔 고병욱도 거의 죽게되엿는데 맛참 지난 십일월 십사일에 대만에 다니는 발동긔선이 지난다가 발견하고 구조하여 그 부근 장긔현 남송포군옥지포(長崎縣南松浦郡玉之浦)에다 상륙식히엿는데 그는 일주일 이상이나 먹지못하고 자지도 못하여 피곤함을 익히지 못하야 그 곳에 몃칠 치료를 밧아 가지고 지난 이십일에 그 곳을 떠나 그 고향인 제주도를 향하엿는바 이십일일에 부산에 상륙하야 갈 곳이 업서 방황하는 것을 그 사정을 안 부산의 량경환(梁卿煥)씨가 자기집에 자유수식하여 그의 고향인 제주도 고산까지 보내줄터이라더라(부산)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27-11-24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9
첨부파일
379. 돌습(突襲)한 폭풍(暴風)에 일가삼구 조난(一家三口 遭難)(1927년 11월 24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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