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당(公會堂)을 건축(建築)(1929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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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당(公會堂)을 건축(建築)
제주도 정의면 온평리(濟州島 旌義面 溫平里)에서는 제주면 동부 십오리이상 거리(濟州面 東部 十五里以上 距離)에 위치(位置)한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촌락(村落)으로 청년(靑年)들은 유치원(幼稚園)과 농민야학(農民夜學)을 경영(經營)하야 오는바 동리(洞里)에 수용(收容)할집이 업슴을 유감(遺憾)으로 녀겨 거사월삼십일(去四月三十日)에 동리부노(同里父老)와 청년(靑年)이 향회(鄕會)를 개(開)하고 원아(園兒)와 야학생 수용(夜學生 收容)할 방침(方針)을 토의(討議)한 결과(結果) 공회당(公會堂)을 건축(建築)하야 모든것을 이용(利用)하는 것이 조켓다는 의견(意見)이 일치(一致)되자 청년측(靑年側)에서는 기지(基址)를 매입(買入)하고 부노측(父老側)에서는 건축(建築)을 부담(負擔)키로 결정(決定)하고 당장(當場) 기지매입금(基址買入金)으로 다수출연(多數出捐)이 잇섯다더라(濟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