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혁우동맹(革友同盟)을 해체후(解體後) 지하운동(地下運動)에 착수(着手)(1933년 02월 08일) 1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혁우동맹(革友同盟)을 해체후(解體後) 지하운동(地下運動)에 착수(着手) 

조직(組織)과 활동(活動)의 경로(經路) 동지중 위험분자 잇다고 해체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야체카조직(組織) 다섯가지 규률정해 활동 구역(區域)을 분담(分擔)해서 선전(宣傳)

소화(昭和)이(二)년이(二)월경 강창보(姜昌輔) 리익우(李益雨) 신재홍(申才弘) 오대진(吳大進)등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이후 제주도에서 공산주의운동에 활동하여 오다가 소화삼(三)년팔(八)월경 제사(四)차 공산당사건에 검거풍이 이러나게 되자 강창보는 검거되고 남앗는 세사람만은 주의선전에 노력하여 오다가 소화오(五)년삼(三)월경 제주도 동좌면 세화리(濟州島 東左面 細花里) 문도배방(文道培方)에서 신재홍(申才弘) 오대진(吳大進) 문도배(文道培) 김종순(金鍾順) 부태현(夫泰鉉) 김시곤(金時坤)등이 모여서 신재홍의 발의로 제일(一) 착 혁우동맹(革友同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부서를 나누어 신재홍은 농민부 강관순은 청년부 오문규는 소년부 문도배는 녀성부 소집책임자로는 김종순 부태현등으로 결정한 후 잠행적으로 ㅇ누동을 진전시켜 왓다고 한다 그러나 신재홍은 항상 동지이면서도 부태현은 아모리하야도 위험성이 만하 그를 한 크롬에 일을 할수업다 하야 소화육(六)년일(一 )월경 구좌면 하도리(舊左面 下道里) 송림속에 모이어 형식상으로 혁우동맹을 해제하는 동시에 부태현과 인연을 끈코 다시금 혁우동맹은 그후 지하층으로 뿌리를 박고 동면 일(一)대에 운동을 지도하여 오다가 제사(四)차 공산당사건에 검거되엇든 강창보가 감옥에 나오자 신재홍 오대진등이 소화육(六)년사(四)월경에 문도배방에서 집합하야 정식으로 혁우동맹을 해체하엿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3-02-08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3
첨부파일
554. 혁우동맹(革友同盟)을 해체후(解體後) 지하운동(地下運動)에 착수(着手)(1933년 02월 08일).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