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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사실(暴行事實)은 전부(全部)가 부인(否認)(1933년 02월 11일)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폭행사실(暴行事實)은 전부(全部)가 부인(否認) 삼십구(三十九)명의 심리는 끗나 제주도비사공판기후(濟州島秘社公判其後)

목포=게속하야 지난 팔(八)일 오전 십일(十一)시에 예정과 가티 목포지청(木浦支廳) 제일호법정에서 개정된 제주도(濟州島)비밀결사의 공판은 세간에 일부 보도한바 갓거니와 지난 구(九)일 오전 십일(十一)시에시 피고 삼십구(三十九)명만이 출정하게 되자 재판장으로부터 심리가 잇기전 리익우(李益雨)는재판장에게 대하야 출정하야야할 강석만(康錫萬)을 어찌하야 오날에도 법정에 출정시키어 주지 안느냐고 하자 윤석원(尹錫元) 진택주(秦宅周)등이 련속하야 질문하매 재판장은 피고에 대하야 강석만을 병합심리를 하여 주겟다 말하야 피고들은 심리에 응하얏다 치안유지법에 대한 사실심문이 끗나자 폭력행위에 대한 심리에 드러가 재판장은 다시금 김한정(金漢貞)에게 대하야 소화 육(六)년 십일(十一)월 십일(十一)일 제주도 중문리(中文里) 부태혁(夫泰赫)의 아들 부경득(夫庚得)이 죽은 사실을 아는가 하매 김한정은 재판장에 대하야 가정관게로 죽은줄 안다고 말하얏다 재판장은 피고 김한정에게 대하야 피고가 부태혁의 집에 가서 제단을 부시게 하고 또는 협박한 일이 잇는가 하매 김한정은 그런일은 업다고 부정하는 답변을 하얏다 다음으로 진택주에게 역시 가튼 말을 뭇고 남은  십이(十二)명을 일사천리적으로 심리를 한후 오후 이(二)시 이십오(二十五)분에 잠시 휴정하얏다.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3-02-11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6
첨부파일
559.폭행사실(暴行事實)은 전부(全部)가 부인(否認)(1933년 02월 11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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