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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기행(水國紀行): 청청(靑靑)한 귤목(橘木)의 그늘 인어(人魚)의 나라 탐라도(耽羅島)(1935년 07월 30일) 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물론 이것은 우리가 자기물건에 대한 관심이 옛날부터 얼마나 소홀햇든가 하는것도 원인이 되겟지만 제주도가 가진바 역사가 우리생활과 멀엇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는 섬이 아닌가? 섬! 섬이라하면 아름다웁고 진긔스러운 인상을 주는 동시에 그것은 내것이건 남의 것이건 육지와는 아조 멀리떠러저 잇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러니 제주도라하면 “아이구”하고 놀래는 것이 무리한 것도 아니겟지.

그러나 그보다도 “섬”이라하면 무조건하고 적소(謫所)로 인색해온 오래된 경험도 큰 이 원인이 될 것이다. 다시 조선의 대죄인의 최후는 “사약(賜藥)”이 아아니면 “찬축(竄逐)”이엇다. 그리고 이 찬축은 대개 섬이엇고 섬이면 제주도를 내세우게 되엇으니 제주도는 수년간 대죄인의 수용소엿든 것이다. 이러지라 제주도의 외로운 섬에 유적된 사람이 수만으로 헤일수 잇으나 그중에도 아직 우리의 긔억에 새로운 것은 이조초엽의 정언 요직에까지 잇든 유희춘(柳熙春)이가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제주도 적배를 당하엿고 이조말엽의 노론 수령이엇고 유교의 거장이엇든 송우암(宋尤庵)도 이 섬으로 찬축을 당한 것이다.

한번 정배를 당한 사람으로 일즉이 생환한자 별로 없엇고 천만요행으로 생환한자 잇드라도 그 명이 길지 못한 이러한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제주도를 멀리한 큰 원인이다.

이십오(廿五)일 오후 다섯시! 이날이시가 나의 숙망을 완전히 풀게 된 것이니 차속의 피로에 시달린 몸을 제두도행의 태서환(太西丸) 갑판우에 올려 논 것이다.

목포의 부두에 매인 목선이 물속에 얼른거리는 것이 어쩐지 꿈나라 제주도의 면영인 듯, 나도 모르게 섬나라 제주도에 대한 새로운 동경의 정이 끌허 올랏다. 한라산이 잇는 나라, 울창한 귤나무의 나라, 해녀의 나라-

태서환은 물속을 헤치고 노도를 넘고 넘어 대양을 황단할 배로는 너무도 적은 이(二)백돈 내외의 발동선이다. 그러나 배야 적든 크든 보내고 보냄을 받는 안타가운 정경을 실은 배이니 그 어찌 석별의 눈물까지야 없을 것인가? 갑판에서는 삼십(三十) 전후의 웬 여성과 이십이(二十二), 삼(三)세의 여교원인 듯한 두여성이 애가 타서 수건을 흔들고 잇다.

“빠”

이윽고 경적이 울엇다. 그 소리를 신호로 부두에서는 “만세”소리가 연달하 세 번, 만세 소리가 조선말이 아닌 것으로 보아 사립학교 학생들은 아닌상 싶엇다.

“만세! 만세!”

그러타 만세는 삼(三)창이라지만 보냄을 아끼는 정에서 울어나는 소리고보니 반듯이 삼(三)창에만 그처야 한다는 법도 없을 것이다.

(사진(寫眞)은 정방폭포(正房瀑布))​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5-07-30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24
첨부파일
611.수국기행(水國紀行) 청청(靑靑)한 귤목(橘木)의 그늘 인어(人魚)의 나라 탐라도(耽羅島)(1935년 07월 30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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