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이(二): 지리적 특수성(地理的 特殊性)(1937년 08월 28일) 1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이(二): 지리적 특수성(地理的 特殊性)

섬이나 대륙적 풍모(大陸的 風貌) 가추어

보전교수(普專敎授) 최용달(崔容達) 

대륙적(大陸的) 풍모(風貌)를 가진 이 섬나라 사회(社會)는 탐라국(耽羅國)이라는 독립적 사회(獨立的 社會)를 형성(形成)하야 오래동안 외부(外部)의 영향(影響)에서 떠러저 잇섯다. 성내(城內)의 남(南)쪽 삼성혈(三姓穴)(멍굴)은 삼수장(三首長) 양(良), 고(高) 부(夫) 삼성(三姓)씨의 발상지(發祥地)라고 전(傳)한다. 역사(歷史)의 진행(進行)과 함께 신라(新羅), 백제(百濟), 고려(高麗)의 흥망(興亡)과 원명(元明)의 성쇠(盛衰)가 멀리 이 섬에도 물결처 오기는 하엿지만 정치적(政治的)으로 완전(完全)히 그 독립적존재(獨立的存在)를 버리게 된 것은 이조(李朝)부터라고 한다. 종차 이후(從此 以後)로 목사(牧使)를 두어 이곳을 다스리고 갑오변혁 이후(甲午變革 以後)에는 제주(濟州), 대정(大靜), 정의(旌義)의 삼군(三郡)을 분치(分置)하야 목사(牧使)로 하여금 통할(統轄)케하고 약삼십년전광무십년(約三十年前光武十年)에는 다시 목사(牧使)를 폐(廢)하고 군수(郡守)를 두어 전남관찰사(全南觀察使)에 속(屬)하게 하엿고 일한합병(日韓合倂)과 함께 전남도장관(全南道長官)에 속(屬)하게 하엿으며 대정삼년삼월(大正三年三月)에는 다시 “제주(濟州)” 일군(一郡)에 병합(倂合)하고 익년오월일일(翌年五月一日)에는 도사(島司)를 두어 경찰서장(警察署長)을 겸(兼)케하니 무릇 이러한 연혁적 과정(沿革的 過程)은 육지사회(陸贄社會)와이 거리(距離)를 단축(短縮)하고 그 연관(聯關)을 긴밀(緊密)한 경과(經過)이다.

완연(蜿蜒)히 대륙(大陸)에 달(達)하는 다도해(多島海)를 멀리 떠러져 양양(洋洋)한 태양상(太洋上)에 나앉은  이섬의 경위(經緯)는 동경일이육도반 북위삼삼도반(東徑一二六度半 北緯三三度半)에 거(据)하니 길림(吉林), 인천(仁川), 군산(群山)의 삼지점(三地點)을 연결(連結)하는 직선(直線)과 사국고지(四國高知), 좌하현당진(佐賀縣唐津), 대분현우좌(大分縣宇左), 동경팔장도등(東徑八丈島等)을 연결(戀結)하는 직선(直線)과의 교차묵(交叉黙)을 점거(占據)한다. 목포(木浦)를 거(距)하기 팔팔해리(八八海里) 여수(麗水)로부터 구삼해리(九三海里)부산(釜山)까지 일팔(一八)해리(海里) 상해(上海)에 이르기 삼삼0(三三0)해리(海里)라고 한다. 동서약이백리(東西約二百里)남북(南北)이백리(百里) 면적(面績)이 약 일이(約一二)00평방리(平方里)로서 

​2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8-28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6
첨부파일
667.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이(二) 지리적 특수성(地理的 特殊性)(1937년 08월 28일).jpg

제주학 아카이브에서 창작 및 제공하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