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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三):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사회(社會)(1937년 08월 29일) 1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삼(三):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사회(社會)

욕탕(浴湯), 세탁장(洗濯場), 우물까지도 공영(共營)

보전교수(普專敎授) 최용달(崔容達)    

위선(爲先) 이섬의 위치(位置)는 전술(前述)한바로서 근대적기선(近代的汽船)에 의(依)한다면 불과(不過)몇시간(時間)에 도착(到着)될 수잇는 거리(距離)라고도 하겟다. 목포(木浦)서 제주(濟州)까지에 이백톤급기선(二百噸級汽船)으로라도 불과팔시간(不過八時間)에 그다지 고생(苦生)없이 갈수잇으니 만일(萬一)관부연락선급(關釜連絡船級)의 선편(船便)이잇게된다면 무여륙지간(無如陸地間)의 내왕(來往)과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단축(短縮)된것도 작금(昨今)의 일일뿐 아니라 오히려 내일(來日)의 일이라는 것을 알어야한다. 글자(字)그대로의 일엽편주(一葉片舟)로 며칠을걸려가며 황파(荒波)를 헛치고 배떠나든 그날의 정경(情景)을 생각(生覺)하면 여간사생(死生)의 결의(決意)가 아니고서는 도저(到底)히 항해(航海)를 생심(生心)도 못하엿을 것을 알수잇나니 

“진시(秦始)”황(皇)이 서불(徐巿)로 하여금 곤륜산천년고목(崑崙山千年古木)을 벼혀 배를 모아 불사약(不死藥)을 구(求)케하든 삼신산(三神山)이 이곳이라는것도 과연(果然) 그럴듯한 전설(傳說)이며 이조말엽(李朝末葉)에 이르기까지 천고(千古)의 유한(遺恨)을 품고 이곳의 토노(土露)로 변(變)한 불우정객(不遇政客)의 유적지(遺蹟地)엿다는 것도 결(決)코 우연(偶然)이 아니리라 이러한 사정(事情)이야말로 이섬으로 하여금 천애고도(天涯孤島)로 육지(陸地)와의 연결(聯結)을 끈허버리엿든 것이니 인류사회(人類社會)의 기천년(幾千年)의 역사(歷史)의 파도(波濤)가 손쉬웁게 이곳에 이르지못한것도 지당(至當)한 귀결(歸結)인 동시(同時)에 저날의 역사(歷史)를 희미하게나매 현실(現實)로 보여주는것도 또한 행(幸)이라 할가!

모든 인류생활(人類생활)의 원시적형태(原始的形態)인 수렵생활(狩獵生活)은 특(特)히 일언(一言)한바, 이섬의 지리적자연(地理的自然) 즉(卽) 해양(海洋)에 면(面)한 섬이면서도 

“대륙(大陸)”적(的)인 그자연적조건(自然的條件)에 제약(制約)되어 전형적(典型的)으로 영위(營爲)되엇을 것도 의심(疑心)할바 없는것이니저 양 고부삼씨족(良高夫三氏族)이 혈거(穴居)의 생활(生活)로부터 오곡(五穀)을 심고 목축(牧畜)을 일삼게되엿든 농목시대(農牧時代)로 탐라국(耽羅國)의 역사(歷史)가 열리게된것도 개국전설(開國傳說)에 의(依)함)우연(偶然)아닌 전인류수천년전(全人類數千年前) 생활역사(生活歷史)의 일익(一翼)을 구성(構成)함이리라.

​2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8-29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9
첨부파일
668.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三)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사회(社會)(1937년 08월 29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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