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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三):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사회(社會)(1937년 08월 29일) 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차별(差別)과 대립(對立)이 생기고 생산력(生産力)의 확대(擴大)와함께 생산양식(生産樣式)의 변혁(變革)이 거듭되여 고대노예사회(古代奴隸社會), 봉건사회(封建社會)를 거처 시민사회(市民社會)가 역사상(歷史上)에 나타난지가 오래인지라 인류(人類)의 원시적생활형태(原始的生活形態)가 과연(果然) 우리 인류사회(人類社會)의 역사(歷史)에 존재(存在)하엿든가하는것조차 이저버리게되여 그것이 과학적연구(科學的硏究)의 힘이아니고서는 능(能)히 증명(證明)조차할길이없는 오날인지라 장구(長久)한 시일(時日)을 경과(經過)하는 동안, 이곳엔들 변화(變化)야 없엇으랴마는 

“육지(陸贄)”의 영향(影響)이 근소내지태무(僅少乃至殆無)하엿든것과, 그들이 살고잇는 사위(四圍)의 자연적조건(自然的條件)은 이러한 변화(變化)로 하여금 완만(緩慢)한 제한(制限)된 범위(範圍)에 그치게하엿으며 육지(陸贄)의 경제적정치적파란(經濟的政治的波瀾)에 오불관언격(吾不關焉格)으로 유연(幽然)히 그들의 가능(可能)한 발전적생활(發展的生活)을 영위(營爲)하여 왓든것이니 이리하야 아즉도 저날의 인류생활(人類生活)의 면면(面面)이 그들의 오늘의 생활(生活)에 침투(浸透)되여잇음을 볼수잇게 하엿다.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와 원(元), 명(明)에 복(服)하고 이조(李朝)에 속(屬)하엿다 하드라도 그미친바 영향(影響)은 극(極)히 미소(微小)한 정치적여진(政治的餘震)잔파(殘波)가잇을다름으로 경제적(經濟的)사회적제도(社會的制度)문물(文物)이 이곳을 지배(支配)하기에는 너무나 거리(距離)가 멀엇다. 또 이나라의 자연적원시적생활조건(自然的原始的生活條件)이 너무나 완고(頑固)하엿든 것이다 자고(自古)로 이곳에는 

“민란(民亂)”이 만헛다고하나이것도 오히려 최근(最近)의 일이며 그것은 대부분(大部分)외래적지배(外來的支配)의 움직김에 대(對)한 그들의 자위적생활(自衛的生活)에서 나온 행동(行動)이엿을 것이다 이리하야 그들은 오날에 일으기까지 그들의 생활(生活)을 위(爲)하야 공동적(共同的)으로 외래자(外來者)와 자연(自然)의 위협(威脅)에 대(對)하야 싸우면서 그들의 생활역사(生活歷史)를 보합(保合)하여 온 것이다.

​3에 계속​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8-29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2
첨부파일
668.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三)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사회(社會)(1937년 08월 29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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