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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三):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사회(社會)(1937년 08월 29일) 4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이와함께 우리는 수원(水源)의 결핍(缺乏)에 대(對)하야 보아야 한다. 이곳은

 “남해(南海)”의 섬이라 강수량(降水量)이 일년(一年)에 일삼사구모여(一三四九秏餘)로서 목포(木浦)에 비(比)하야도 삼(三)○○모(秏)나만흔 따라서 조선전체(朝鮮全體)에잇어 가장다우지(多雨地)에 속(屬)하나 화산(火山)의 용암(熔岩)으로된 지질(地質)의 관계(關係)로 바위의 간극(間隙)으로 우수류수(雨水流水)는 전부흡수(全部吸收)되어 지상(地上)에 상유하천(常流河川)과 유수(溜水)가 태무(殆無)할뿐아니라 한라산(漢拏山)으로부터 흘으는물은 전부지하수(全部地下水)가되어 멀리 바다에 접(接)하는 해빈(海濱)에와서야 점점(點點)히 거대(巨大)한 육지(陸地)에서는 거의 볼수 없는 위관(偉觀)샘이되어 용출(湧出)할뿐이다. 각하천(各河川)은 호우(豪雨)에 제(際)하야서는 일사천리(一瀉千里)의 거츠른 격류(激流)이나 비가개임과 동시적(童詩的)으로 곧 건천(乾川)이되어버린다. 삼림지대(森林地帶)와 초생지대(草生地帶)는 그삼림(森林)과 풀로써 오히려 습기(濕氣)가 남어잇으되 그것을 이용(利用)할사람의 음료수(飮料水)가 결핍(缺乏)되고, 음료수(飮料水)를 얻을수잇는 해안(海岸)의 경지(耕地)는 경작(耕作)에 적당(適當)한습기(濕氣)조차도 없는듯하다. 이리하야 논(답(畓))이라고는 거의

 “구경(求景)”하기도 어려운형편(形便)이며 이러한 수원관계(水源關係)는 그들로 하여금 해안(海岸)을 따라 공동부락(共同部落)을 형성(形成)케하엿나니 해빈(海濱)의 샘은 그들의 공동(共同) 우물이 되며 공동세탁장(共同洗濯場)이되며 공동욕장(共同浴場)이된다.(애월(涯月)의 정동정월(井同井月)같은 것은 유명(有名)하다)

이러한 박토(薄土)는 그들의 농경(農耕)을 원시적(原始的)으로 제약(制約)하는 동시(同時)에 이러한 농경(農耕)만으로는 여하(如何)한 노동(勞動)을 할지라도 도저(到底)히 그들의 생계(生計)를 해결(解決)할 수가 없게한다. 이리하야 그들로하여금 어렵(漁獵)을 겸업(兼業)케하고 다시 출가로동(出稼勞動)을 강요(强要)한다. 넓은 초생지대(草生地帶)는 우마(牛馬)의 방목(放牧)에 이용(利用)되여 우리로하여금 무엇보다도 원시생활(原始生活)의 면형(面形)에 놀라게하고 그윽한 회상(回想)을 자아내개하는 동시(同時)에 고래(古來)로 풍다(風多), 석다(石多)와 함께 마다(馬多)를 전(傳)하여 군마(軍馬)의 산지(産地)엿다고한 아즉도 근대적시설(近代的施設)을 가지는 목장(牧場)은 하나도 보지 못하게하는것도 수원(水源)의 결핍(缺乏)이 큰 원인(原因)이 되는듯하다.

(사진(寫眞)은 제주도부녀(濟州島婦女)의 근로광경(勤勞光景))​​

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2017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8
첨부파일
668.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三) 상호부조(相互扶助)의 사회(社會)(1937년 08월 29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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