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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사(四): 생활(生活)은 보수적(保守的)(1937년 08월 31일) 2

분야별정보 > 역사 > 제주사일반



그들은 다왕이라는 박덩어리로 만든 간단(簡單)한 부잔(浮棧)과 조개해초(海草)를 채취(採取)하는 한 개(個)의 칼을 가지고 나체(裸體)로 사기(四期)를 통(通)하야 하로도 몃 번식 그리고 한 번에 몃시간(時間)식 물속에서 군두박질을 계속(繼續)하여 사러가는 것이다.  다왕을 엽헤끼고 오른손에 칼을 든 그들이 

“수십(數十)”명(名)의 장사진(長蛇陣)으로 질서(秩序)잇게 부두(埠頭)를 거러 노래를 지저기며(불은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그들의 노래가 숨차게 들린다) 일렬(一列)지여 혀염처 드러가는 광경(光景)은 참으로 장쾌(壯快)한 현대(現代)의 스포쓰군(軍)에서도 볼 수 없는 장쾌(壯快)한 그것이나 한번 그것이 그들의 생활(生活)을 위(爲)한 그리고 온집안의 생계(生計)를 위(爲)한 일상적(日常的)으로 영위(營爲)하는 자연(自然)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생각(生覺)하면 어찌 한갓 장쾌(壯快)하다는 느낌만을 가질수 잇으랴!

여사(如斯)히 하야 그들은 주(主)로 농목어렵(農牧漁獵)의 생활(生活)을 영위(營爲)케 되는 동시(同時)에이러한 농어생활(農漁生活)를 근간(根幹)으로 하는 그들의 경제(經濟)는 

“자족(自足)”자급(自給)의 원시적 자연경제(原始的 自然經濟)의 영역(領域)을 멀리 버서나지 못하엿든 것이다. 농업(農業)에 잇서서는 그 면적(面積)이 비록 광대(廣大)하되 그  대부분(大部分特) 특히 산간지대(山間地帶)같은 것은 그것을 이용(利用)할 방도(方途)가 전연(全然)없고 우마(牛馬)의 방목(放牧), 모초(茅草)의 채취(採取)에 그치며 패(稗), 소두(小豆), 교맥등(蕎麥等)의 일부(一部)의 경작(耕作)이 잇으나 그도 아직 삼년내지(三年乃至) 십년일경(十年一耕)의 상태(狀態)라고 한다.

경작지대(耕作地帶)로 이용(利用)되고 잇는 곳도 전연(全然) 토박(土薄)하고 용수결핍(用水缺乏)으로 답(畓)은 그 총면적(總面積)에 대(對)하야 불과일분(不過一分)에 지나지 못하며 (도세일람구0(島稅一覽九0)혈(頁))종곡(種穀)도 맥(麥), 두등(豆等)이 가장 주요(主要)한 것이다. 비단(非單) 그 이용(利用)에서 뿐만 아니라 경작(耕作)에 잇어서도 가장 원시적(原始的)농구(農具)로서의 원시적(原始的) 조방(粗放)한 농법(農法)을 하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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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사진
학문분야
역사 > 제주사일반
생산연도
1937-08-31
저자명
동아일보
소장처
제주학연구센터
조회
14
첨부파일
669.제주도종횡관(濟州島縱橫觀) 사(四) 생활(生活)은 보수적(保守的)(1937년 08월 31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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